[디지털데일리 김보민 기자] 2023년은 오피스 소프트웨어(SW) 업계에 대격변이 일어난 해다. 챗GPT의 등장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부상했고, 오피스 영역에서도 편리한 문서작업을 요하는 사용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빅테크를 비롯해 국내 업계에서도 AI 오피스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빅테크의 경우 거대 자본력과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수익을 내겠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 이에 맞설 만한 승부 카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C·스마트폰 이외의 플랫폼을 확보하거나, 경량형 언어모델(sLLM) 기반의 틈새시장 공략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MS가 쏘아 올린 '유료 AI' 신호탄
최근까지 AI 기술은 일반 사용자들에게 '신기한 기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꼭 돈을 내고 AI 기능을 써야 하나"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반향을 일으킨 챗GPT의 경우에도 기본 무료 기능만 써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오피스SW 시장에 코파일럿(Copilot·부조종사)을 선보이면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MS는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등 M365에 AI 기능을 추가해 쓰려면 1인당 월 30달러를 내야 한다고 명시했다. M365는 11월 1일(현지시간)부로 정식 출시됐다.
MS는 유료 AI뿐만 아니라, 오피스SW의 변신도 이끌고 있다. M365 코파일럿은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문서를 요약하거나 이메일을 생성하고, 계획을 작성하고 엑셀을 분석할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용자를 위해 주요 내용을 요약해 제공할 수도 있다. 사용자 일상 곳곳에 'AI 조수'를 심은 셈이다.
MS가 코파일럿 기능을 통해 유의미한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볼 부분이다. 앞서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는 MS가 코파일럿을 통해 2026년까지 연간 총 10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MS 또한 코파일럿으로 오피스SW 판도를 뒤바꾸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포춘(Fortune)의 매출 순위 100대 기업의 40%가 코파일럿을 사용 중"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한국이라고 왜 못해?" 국산 오피스SW의 반격
국내 오피스SW도 AI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국내 기업의 경우 올해 AI 전략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데 힘을 쏟았다. 대표적으로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그리고 폴라리스오피스는 공공과 일반 고객 등 각자 특화된 영역에서 AI 사업을 구상했다.
한컴은 올 3월 클라우드 기반 구독형 서비스 '한컴독스'에 생성형 AI를 도입한다는 소식을 알린 뒤 내년 정식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AI 기반의 지능형 문서 작성 도구인 '한컴 어시스트'도 내년 상반기 베타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지난 11월 회사 전략 발표회에서 "내년은 한컴의 AI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산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5년 내 글로벌 빅테크 기업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공공 분야에서도 AI 협력을 모색 중이다.
폴라리스오피스는 한컴보다 먼저 AI 기능을 서비스하고 있다. 공공보다는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AI 역량을 펼치는 데 집중한 모습이다. 폴라리스오피스는 문서 기반으로 사용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AI 기능 'ASK Doc'을 9월 정식 출시했다. 월 이용료는 1만4900원과 2만4900원 등 두 가지로, MS 요금제와 유사하다.
◆ 미지근한 실적의 연속, AI는 '구원투수'?
향후 사업에 대한 기대감과 달리 국내 오피스SW 기업들의 실적은 미적지근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일시적 비용 요인이 반영된 탓이겠지만, 업계에서는 실적을 반등시킬 만한 유의미한 전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분기 대비 비수기로 꼽히는 3분기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한컴은 연결 기준 매출 569억6961만원, 영업이익 32억6328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보다 매출은 3.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5.6% 감소했다. 방산 등 일부 연결사업의 이익률이 좋지 못했던 데다, 별도 기준 직원 연봉 계약이 소급 반영된 게 영향을 끼쳤다. 다만 클라우드 부문(웹부문 포함)의 매출 비중이 14.8%를 차지하며 10% 선을 돌파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같은 기간 폴라리스오피스는 매출 498억원과 영업이익 43억원을 달성했다. 폴라리스세원이 당분기 연결로 편입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세자릿수 성장세를 보였지만, 이를 제외한 오피스SW 영역은 지난해 동기 대비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AI는 내년도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확정할 수 없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MS가 '유료 AI' 분야에서 먼저 성적을 내야 국산 오피스SW 또한 분위기를 탈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커지는 MS 몸집, 국내 오피스SW 대응은?
현실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MS의 점유율을 나눠 가지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 또한 MS의 점유율을 뺏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최근 김연수 한컴 대표는 "5년 내 글로벌 빅테크 기업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출시 예정인 '한컴 어시스트' 앞에 한국판 코파일럿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대신 국내 오피스SW 기업들은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국내 사용자들이 MS 생태계를 점점 더 선호하는 상황 속에서, 차별화가 될 만한 사업 전략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글로벌 SW 공세에 대응할 만한 차별 포인트가 있는지는 지켜볼 부분이다.
폴라리스오피스의 경우 오피스SW를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기존 PC·스마트폰에서 자동차로 확장했다. 폴라리스오피스 웹에 차량 모드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폴라리스오피스 웹은 웹 브라우저 화면에서 MS 오피스, 한글, PDF 파일을 열람 및 편집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프로그램이다. 사용자는 차량 내에서 '애스크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운전자가 "문서 내용을 요약해줘"라고 명령하면 음성으로 답변을 주는 방식이다. 해당 서비스는 현재 테슬라 전기 차량을 대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이번 행보는 모빌리티 분야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모빌리티 기업들은 자동차의 미래로 '바퀴 달린 집'을 그리고 있다. 차량 내에서 운전자와 탑승자가 즐길 만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한컴은 AI와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 기술을 결합한 문서 기반 질의응답 시스템을 개발하는 동시에, sLLM 연구에도 속도를 올릴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제품 내 모든 기능을 한컴 기술로 통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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