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개선되면서 양국 반도체 산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로 멀어졌던 사이가 쌍방 투자로 가까워지는 분위기다.
4일 SK하이닉스는 SK스퀘어, 신한금융그룹, LIG넥스원 등과 1000억원을 공동 출자해 해외 유망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첫 대상으로 일본 반도체 강소기업을 검토 중이다. SK하이닉스 등에 따르면 ▲반도체 검사장비 A사 ▲친환경 반도체 부품 B사 ▲인공지능(AI) 반도체 C사 ▲차세대 반도체 소재 D사 등 후보군 중심으로 기술검증을 진행하기로 했다. 완료 시 조성된 자금의 약 60%를 투입할 예정이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소부장 강국으로 꼽힌다. 오랜 세월 쌓아온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 공급망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실제로 소부장 전 영역에서 대체가 어려운 하이엔드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차지하는 일본 기업이 다수다.
이러한 영향력은 지난 2019년 일본이 대한(對韓) 수출규제를 펼치는데 원동력이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 협력사로부터 핵심 소재, 장비 등을 조달하지 못하면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다만 현지 소부장 업계 입장에서도 양사는 주요 고객인 만큼 일본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본 업체들이 한국 투자를 늘리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와 별개로 양국은 정권 교체 후 정상회담을 연이어 진행하는 등 관계를 빠르게 회복했다. 지난달 말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 완전 복원하면서 두 나라 간 무역 갈등은 종결됐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일본 소부장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 활동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달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일본 도쿄에서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산업부는 “최근 5년간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유입된 투자 비중은 5%에 해당한다”면서 “미국, 유럽연합(EU) 등 대비 크지는 않으나 첨단 소부장 업종을 중심으로 투자가 다수 유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한일 반도체 동맹이 본격화하게 된 셈이다.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 등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 2019년 도쿄에 이미지센서 연구개발(R&D) 센터를 개소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역시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일본에 산재한 연구개발(R&D) 기능을 통한 ‘디바이스솔루션리서치재팬(DSRJ)’을 출범했다. 이전에는 설비, 소재, 이미지센서, 패키징, 시뮬레이션 등 5개 분야 연구소를 운영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이같은 결정은 일본이 자국 반도체 부활을 노리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도 현지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일본 요코하마에 수천억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시제품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난 3일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한국, 미국에 이어 일본에 새롭게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양국 정상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 협업 범위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미국 중심의 칩4가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국내 소부장 육성 정책이 마련됐고 하나둘씩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일본과의 밀월은 자체 생태계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최대 수출처인 중국과의 거리 유지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협력하는 건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제2의 일본 수출규제, 사드 사태가 발발하지 않도록 핵심 품목을 국산화하는 등 내성을 길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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