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여러 이슈나 현안을 모두 집어삼긴 ‘블랙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임기 시작일인 5월 10일부터 청와대가 아닌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이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하고 있다.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갑작스레 등장한 내용이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2년부터 이어진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 집무실 이전을 공약했다. 다만 각종 문제로 모두 좌초됐다.
집무실 이전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대통령 경호다. 이에 윤 당선인은 광화문 청사 뜻을 접고 국방부 청사로 선회했다. 여기서 떠오른 문제는 ‘안보’와 ‘비용’이다. 국방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데 필요한 비용, 또 청와대와 국방부의 이전 과정에서 노출될 수 있는 지휘체계상의 미흡이나 사이버보안 공백 우려 등이다.
사이버보안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집무실 이전 논란을 본다면 다소 불안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거짓말’ 내지는 ‘선동’이라고 주장하나, 북한으로부터의 해킹은 실재하는 위협이다. 일일이 세기도 어려운 만큼의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각계 전문가들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피싱 메일이 기존의 10~20배 이상 늘었다가 선거가 마친 뒤 급감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정권교체기에 다방면의 공격을 수행해 정보를 탈취하기 위한 북한 해커조직의 소행이라는 것이 보안업계의 분석이다.
북한의 해킹은 상수(常數)다. 그에 대한 대비책을 공고히 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 역시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어 사이버보안 인재 10만명 양성 공약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북한이 가장 노리기 쉬운, 대통령 교체기에 사이버보안은 뒷전으로 밀린 집무실 이전 논란이 아쉽다.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은 정치적인 결단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구중궁궐’ 같은 이미지의 청와대보다, 시민에게 가까이 있겠다는 의지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시기다. 5월 10일까지 47일 남았다. 내부 리모델링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청와대와 국방부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옮기고, 옮긴 뒤 문제는 없는지 평가하는 등의 작업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다.
2020년 12월, 조 바이든 대통령 임기 시작을 한달여 앞두고 정보기술(IT) 관리 소프트웨어(SW)가 해킹된 것이 파악됐다. 이로 인해 미국 재무부, 국무부, 국토안보부, 국립보건원 등을 비롯해 핵무기를 담당하는 에너지부와 국가핵안보실(NNSA)도 피해를 입었다.
이 일은 바이든 대통령이 ‘해커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정부를 겨냥한 공격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미국도 당한 일을 우리라고 안 당하리란 보장은 없다.
3월에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해킹당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정보원은 사이버위기경보를 ‘주의’로 격상했다. 정권 교체기에 발생할 수 있는 해킹 위협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문제 없을 것”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국민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사전 점검, 이전 중 사고 발생시 대응 매뉴얼, 이전 후 점검 등의 계획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보다 보안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