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국내 망 사용료를 회피하고 있다는 '망 무임승차'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대형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국내에 망 사용료 지불을 거부하고 있는 행태다. 결국 글로벌 CP의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 하는 법안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망 사용료와 관련한 법제화의 필요성을 짚어보고, 관련 법안의 핵심 조항 및 추진 현황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지난 8월31일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인앱결제강제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국내외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구글·애플 등 대형 앱마켓의 인앱결제 강요를 막는 세계 최초 법안으로서,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글로벌 기업의 갑질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했다는 의미가 컸다.
국회 ICT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 글로벌 기업을 겨냥한 또 다른 법안이 발의됐다. 망 사용료 분쟁을 촉발한 넷플릭스가 그 대상이다. 국내 업계에서는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인 넷플릭스가 국내 인터넷사업자(ISP)에 지불해야 할 망 사용료를 회피하고 있다며 이를 막을 법제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 입법 자초한 넷플릭스의 ‘코리아 패싱’
망 사용료와 관련해 입법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19년이다. SK브로드밴드와 망 사용료 분쟁을 겪던 넷플릭스가 한국 정부의 중재를 ‘패싱’해 논란을 낳았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SK브로드밴드 요청에 따라 재정 절차에 나섰으나, 넷플릭스는 방통위 중재안이 나오기도 전 SK브로드밴드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에도 글로벌 기업이 규제 사각지대임을 악용해 정부의 정책과 판단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애시당초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 협상에조차 나서지 않는다’며 방통위에 재정 절차를 신청했는데, 정부마저 패싱한 넷플릭스의 태도가 사실상 이를 입증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4월 자신들의 망 사용료를 낼 이유가 없다며 SK브로드밴드를 대상으로 ‘채무부존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올해 6월 1심 재판부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최근 다시 항소를 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넷플릭스가 항소심에서 다시 패소한다 해도 대법원 상고까지 직행할 것이라 보고 있다.
결국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대형 CP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법제화만이 해결책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넷플릭스법)이 있긴 하지만, 이는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CP에 한해 망 품질 유지 의무를 부여한 것이어서 직접적인 망 사용료 납부로 이어지진 못했다.
◆ 여야 법안 병합 심사될 듯…연내 통과되나
이와 관련해 현재 국회 과방위에는 전혜숙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영식 의원(국민의힘), 김상희 부의장(더불어민주당), 이원욱 과방위원장(더불어민주당) 등 4건의 유사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대형 CP가 망 사용료를 지불하거나 최소한 망 사용료 협상을 치르게 할 수 있도록 한 법안들이다. 현재로선 병합 심사돼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그 중 글로벌 CP의 망 사용료 지급을 직접적으로 강제한 법안은 김영식 의원안이다. 제2의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부가통신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 망을 이용해 인터넷접속역무를 제공받음에도 인터넷접속역무 제공에 필요한 망의 구성 및 트래픽 양에 비춰 정당한 이용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했다.
전혜숙 의원안의 경우 ‘통신망 이용 또는 제공에 관해 계약 체결을 부당하게 거부하거나 체결된 계약을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했다. 김상희 의원안 역시 ‘전기통신사업자는 정보통신망 이용에 관해 다른 전기통신사업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원욱 위원장이 발의한 법안은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이 담겼다. ‘정보통신망 서비스’를 법적 명시하고, 정보통신망 서비스 이용계약 체결 시 이용기간, 전송용량, 이용대가 등 반드시 계약상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을 규정했다. 또한 불공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우월적 지위 이용 금지 ▲타 계약과 유사한 계약 시 불리한 조건 금지 ▲불합리한 사유로 인한 계약 지연 및 거부 금지 ▲제3자와의 관계로 인한 상대방 경쟁 제한 금지 ▲합의사항 거부 또는 이면계약 등 불이익 조건 설정 금지 등의 사항을 준수하도록 했다.
국회 과방위에 따르면 넷플릭스법과 관련해선 여야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글로벌 플랫폼은 그 규모에 걸맞게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 망 사용료 부과 문제에 대해 챙기라”고 당부한 만큼, 여당 측에서 적극적으로 법안 통과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 넷플릭스, 국회 법안 추진에 전방위 방어전
넷플릭스는 이러한 망사용료 의무화 법안 추진에 대해 전방위적인 방어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부사장은 3일 김영식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법안이 최신 기술의 도입을 저해하지 않고, 공정한 망사용료 책정과 거둬들인 망사용료의 공정한 사용에 대해 고려해 달라”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법안 추진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조기열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정당한 이용대가’라는 용어가 모호하고 ▲민사 분쟁에 대해 행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으며 ▲트래픽 양 등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에 한해 이용대가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헌법상 위배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전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지적에도 넷플릭스법 통과 근거는 충분하다는 게 국회의 시각이다. 예컨대 ‘정당한’이라는 용어나 트래픽을 기준으로 한 사업자 구분은 시행령 등을 통해 단서를 구체화할 수 있고,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최종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므로 소급 입법의 문제도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