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필리핀 카바나투안 시티의 한 시골 마을에는 블록체인 기반 게임을 주요 벌이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예 게임 플레이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여럿 생겼을 정도다.
한 달 기준으로 보면,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번 돈이 필리핀 평균 임금을 크게 웃돌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몰이 중이다. 이런 현상을 기록한 유튜브 채널 ‘Play to Earn’의 한 영상은 현재 18만 조회수를 넘어섰다.
◆떨어져도 3배 오른 가격…실수요 반영된 가격 상승
해당 영상에 나오는 게임이 블록체인 기반 게임인 엑시인피니티다. 비트코인(BTC)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횡보와 하락을 거듭하는 요즘, 엑시인피니티의 토큰 AXS 가격은 7월 들어 5배가 됐다. 대부분의 가상자산 가격이 비트코인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고려하면 큰 차이다. 국내 거래소 업비트에서는 AXS가 비트코인보다 3배 이상 많이 거래되고 있다.
19일 오후 3시 코인마켓캡 기준 AXS 가격은 16.7달러 선이다. 이달 1일에는 5.02달러였으며 지난 15일에는 27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물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거품이 끼었고, 현재는 거품이 사그라들면서 가격이 하락했으나 7월 초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3배가 넘는 가격이다.
엑시인피니티의 또 다른 토큰인 SLP 가격도 꽤 올랐다. 엑시인피니티에는 토큰이 두 개가 있는데, 거버넌스토큰인 AXS와 게임 내 배틀이나 퀘스트로 획득할 수 있는 SLP(Smooth Love Potion)다. 게임 안에서 ‘러브 포션’으로도 불리는 이 토큰 가격도 이달 1일 0.12달러였으나 현재는 0.26달러 수준이다. 한 때 0.37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엑시인피니티 토큰의 가격 상승이 이목을 끄는 이유는 상승 요인에 실수요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큰 가격이 오르는 동안 엑시인피니티 게임의 플레이어 수가 크게 증가했다.
지난 4월 말 3만 8000명이었던 일활성사용자(DAU) 수는 7월 초 25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선 투기 세력이나 마켓메이킹으로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례들과 차이를 보인다.
◆다른 블록체인 게임과의 차별점은?
그렇다면 무엇이 엑시인피니티의 실수요를 끌어올렸을까. 게임 내 다양한 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플레이 구조와 그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이 적절히 결합된 영향으로 보인다.
우선 게임 내에 토큰이코노미가 구축되고, 게임으로 번 토큰을 현금화할 수 있는 건 해당 게임이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이다. 엑시인피니티 내 토큰인 SLP나 AXS는 모두 바이낸스를 비롯한 여러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돼있다.
이 때 엑시인피니티의 경우 게임 내 토큰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다른 블록체인 게임에 비해 다양한 편이다. 단순히 아이템을 거래함으로써 수익을 내는 방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일 퀘스트를 깨거나 배틀에서 이기는 등 게임 내 작은 활동으로 SLP를 벌 수 있다. 게임 캐릭터인 ‘엑시’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많다. 엑시 캐릭터를 교배시킨 뒤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내거나, 엑시의 레벨을 업그레이드해서 배틀 승리 확률을 높여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자체 사이드체인이 있어 다른 블록체인 게임에 비해 수수료도 저렴하다. 블록체인 게임들은 대부분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더리움 상엔 많은 서비스들이 있어 거래 수수료(가스비)가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엑시인피니티는 자체 사이드체인 ‘로닌’을 출시했다. 사이드체인은 기존 이더리움(메인체인)에 붙어있는 하위 블록체인을 말한다. 사이드체인에서 대부분의 거래를 처리하고, 중요 정보만 메인체인에 저장하게 된다. 거래 속도를 높이고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엑시를 번식시킬 때 등 게임 내에서 가스비(수수료)가 드는 상황이 있는데, 수수료가 저렴해지니까 게임 사용자 수도 증가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록체인 효용 보여준 사례…‘작업장’ 등 부작용은 주의해야
엑시인피니티의 수요 증가가 의미 있는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다주는 효용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가상자산 열풍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블록체인 기술이 실제로 어떤 효용을 가져다주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의문과 달리, 필리핀에서는 코로나19로 잃은 일자리를 엑시인피니티로 극복한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엑시인피니티의 필리핀 사용자가 크게 늘기도 했다. 구글 검색량을 봤을 때 필리핀에서의 검색량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게임 플레이를 위해선 캐릭터인 엑시를 구매해야 한다. 이 때 가장 저렴한 엑시도 170달러 수준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엑시를 대여해주고 일부 이자를 받는 서비스까지 나왔다. 블록체인 기반 게임 하나를 중심으로 여러 비즈니스가 생겨나는 모습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게임의 인기 증가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엑시인피니티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게임 내 토큰인 SLP를 얻기 위해 휴대폰 수백 대를 놓고 24시간 게임을 돌리는 일명 ‘작업장’이 생겨났다”며 “엑시를 사서 키우고 게임 아이템과 재화를 현금화하는 전문적인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순수 플레이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게임 내 장점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이런 부작용을 인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