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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암호화폐, 호부호형을 허 하노라’…과연 언제쯤?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비운의 천재 허균이 쓴 소설 홍길동전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라는 구절때문에 유명하다. 천륜도 뛰어넘는 조선시대 양반 신분질서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40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패러디되고 있다. 최근에는 암호화폐 업계에서 이 홍길동전의 ‘호부호형’대사가 쓰이고 있다.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서비스는 암호화폐 혹은 가상자산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못한다. 단순 자금 모집 목적으로 발행한 암호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내에서 쓰는 유틸리티 토큰임에도 ‘블록체인 기반 포인트’ 같은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기사에도 그런 표현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하는 기업이 있었다.

심한 경우엔 블록체인이라는 용어마저 꺼리는 기업도 있다. 규제당국의 눈치를 보는 상장사나 대기업 중 그런 경우가 종종 나온다. 블록체인 기술을 무조건 암호화폐와 엮는 사회적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왜 암호화폐를 암호화폐라 부르지 못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암호화폐=사기’라는 해묵은 프레임 때문이다.

암호화폐가 범죄에만 쓰이는 것처럼 묘사한 글들과 현대판 ‘바다이야기’라고 못박아버리는 글들이 여전히 넘친다. 여기에다 가끔씩 거래소의 자전거래 사기 혐의 소식에는 암호화폐‧블록체인 업계 전체를 사기로 치부하는 여론이 빗발친다.

그런 글에서 블록체인 관련 특허나,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정부로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 받고, 시범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된 기업도 암호화폐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뒤로 숨게 된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인 신기술임에도 블록체인의 효용 가치도 흐려지게 된다.

시대가 달라졌음을 인지해야 할 때다. 여전히 암호화폐 가격은 오르락 내리락하지만, 적어도 누구나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판매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내년 3월 시행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은 암호화폐로 사업하는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정보보안 인증, 실명계좌 사용 등 몇 가지 의무를 부여했다. 가상자산사업자의 구체적 범위는 이달 발표되는 시행령에서 정해지겠지만, 누구나 암호화폐로 사업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옥석도 가려지고 있다. 특금법 내 의무를 지킨 거래소만 영업하게 되면 제도권 내 거래소에 상장하지 못하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들도 자연히 살아남을 수 없다. 탄탄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갖춘 기업들이 발행한 암호화폐만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에 시상하는 공모전을 열었다.

블록체인 금융 서비스, 일명 디파이(De-fi) 서비스에서 쓰이는 금융자산은 곧 암호화폐다. 탄탄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는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사례들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들이기 위한 법안들도 꾸준히 발의되고 있다.

신기술 업계에서 강산은 10년이 아니라 1년이면 바뀐다. 지금은 비트코인 광풍이 불던 2017년도, 무조건적인 ‘거래소 폐쇄’ 발언이 나오던 2018년도 아니다.

과연 암호화폐는 언제쯤 ‘호부 호형을 허 하노라’는 말을 듣게 될까.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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