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신현석기자] 가상화폐(암호화폐)거래소는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사기업이다. 일반인들은 ‘거래소’라는 명칭 때문에 은행, 증권거래소와 같은 공공성과 신뢰성을 부여하지만, 실상은 사채업자보다 못한 주먹구구식 운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금융감독 당국의 권한이 미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가상화폐거래소와 분쟁이 발생하면 소비자들은 금융감독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직접 민형사상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하는 구조다.
최근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국내 2위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5.9 비트코인(BTC)을 사서 이를 해외 거래소로 송금하려 했다.
그런데 빗썸 측으로부터 ‘3일 출금 제한’ 조치를 받았다. 이에 대해 A씨는 빗썸 고객센터에 문의했으나 본인 확인이 되지 않으면 ‘3일’이 지나도 계속 출금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빗썸 사이트를 통해 본인 얼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가린 주민등록증, 인증 목적 및 사진 촬영 날짜 등을 메모한 종이를 한 컷에 나오도록 사진으로 찍어 제출해야 본인 인증이 완료되는 식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상당히 불쾌해할 수 있어 보인다.
이에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 빗썸에서 요구하는 대로 얼굴, 주민등록증 등을 같이 찍은 사진을 빗썸 측에 제출했다. 빗썸이 출금을 차단하는 경우, 가상화폐를 통한 해외 송금뿐 아니라 원화 출금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씨는 “마치 범죄자가 된 기분”이라며 “주민등록증과 얼굴 등 중요 개인정보를 보내 찜찜하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빗썸 측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빗썸 측은 거래 제한 규정이 가상화폐 관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기자가 직접 빗썸 고객센터에 문의한 결과, 빗썸은 처음 계좌를 개설한 고객이 큰 금액에 해당하는 가상화폐를 해외 거래소로 출금하려는 경우 범죄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출금을 제한할 수 있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출금 제한 조치에 그치나, 범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결제, 입금, 출금 등 모든 거래를 제한하는 ‘거래정지’가 내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판단이 뚜렷한 기준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빗썸 고객센터 직원은 “계좌를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객이 너무 큰 금액을 해외로 내보내려고 하는 경우, 범죄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어 불가피하게 출금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범죄와 연관된 경우는 1% 정도에 불과한 비율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A씨는 “범죄 의도가 아니라 국내에서 살 수 없는 해외 거래소의 가상화폐를 구입할 생각에 가상화폐 세계 기축통화인 비트코인으로 송금하려 했던 것”이라며 “이용자 입장에서 알 수 없는 자체 규정으로, 무작정 범죄자 취급했다는 점에서 화가 난다”고 억울해했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는 금융거래 시 이체한도를 분명하게 정확한 수치로 고객에 고지하고, 미리 고객이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최대한 높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빗썸 측은 ‘범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구체적인 ‘고액’ 기준을 외부에 밝히지 않고 있다. 거래금액 한도가 얼마인지 고객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객 자신이 최대로 송금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당초 정부는 이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작년 말부터 가상화폐거래소 관련 대책을 강구해왔으며,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부처는 허술하게 운영되는 가상화폐거래소 실태를 지적해왔다.
실제로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빗썸 등 7개 국내 가상화폐거래소가 결제 이용 금액이 과도하거나, ‘회사의 운영 정책’과 맞지 않는다는 등의 포괄적인 사유로 결제, 입금, 출금을 제한하는 불공정 약관 조항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빗썸은 공정위로부터 시정권고 조치를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 이상이 지났으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이용자를 무시한 채 불공정 조항 그대로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선 가상화폐거래소들이 묶여있는 이용자들의 돈을 활용해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구심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사설 가상화폐거래소들이 거래정지나 출금 제한 조치 등을 수단 삼아 고객으로부터 예치한 자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실제로 올해 4월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코인네스트의 김모 대표는 고객 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경찰에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금융권 및 IT업계에서는 빗썸이 본인 확인을 이유로 이용자 사진 및 주민등록증을 한 번에 찍어 제출하도록 하는 처사 역시, 국내 대표 거래소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거리가 먼 주먹구구식 시스템이란 지적이 나온다.
가상화폐거래소가 내부 시스템상에 쌓아놓은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얼마나 엄격하게 관리되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실제 작년 빗썸은 해킹을 당해 3만 건을 훌쩍 넘는 이용자 정보가 유출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빗썸의 경우처럼 제출된 사진이 실질적으로 본인 확인(검증)에 얼마나 유용한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본인 검증보다는 향후 법적 문제가 불거질 때 거래소 측이 이용자 사진을 ‘책임 면피용’ 증빙 서류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국내 금융회사들은 비대면채널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명확한 본인 확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신분증, 휴대폰, 생체인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본인인증을 하고 있으며 여기에 ICT를 활용한 최첨단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4~5가지 본인 확인방식을 선택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거래소들은 막대한 시스템 구축 비용이 요구되는 ICT 인프라 체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이번 사례처럼 고객이 직접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들고 본인 사진을 찍어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주먹구구식 가상화폐거래소의 고객 정보보호 실태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만 아니라 유사 금융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책의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신현석 기자>shs1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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