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금융 당국의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된 시중은행과 지역은행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대강당에서 가진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설명회에서 은행이 포함된 금융지주회사에게는 인가에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존 은행들이 별도로 인터넷전문은행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않느냐’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 당국의 의중이 확인된만큼 은행권은 각기 다른 셈법을 가지고 향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BNK, DGB, JB 등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들은 기존 인터넷전문은행 전략을 수정하는 등 대응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받아 지역적 한계를 탈피하고자하는 의욕이 누구보다 강했기때문에 그만큼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지역거점 금융지주회사들은 일단은 인가대상에서 제외는됐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진 장점이 분명하기때문에 다각적인 우회전략을 통해, 향후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시 전개될 시장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그동안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에 강한 의욕을 보여왔던 BNK금융그룹의 경우, 계열 은행인 부산은행을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대체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인터넷은행 서비스 모델을 마련하는 한편 ▲인터넷전문은행에도 지분을 참여하는 방안 등 투 트랙 전략을 내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은행은 그룹내 또 다른 은행계열사인 경남은행과의 협력을 통해서도 타 은행과 차별화된 인터넷은행 서비스 개발 노하우를 공유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혁신적인 인터넷은행 서비스 모델이란? = 부산은행은 스마트금융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 효과를 낼 수 있는 비대면금융서비스를 빠르면 연내에 선보일 계획이다. 예를들면, 우리은행이 선보인 모바일전문은행 서비스인 ‘위비뱅크’, 하나금융그룹이 캐나다 현지에서 효과를 거둔 ‘1Q뱅크 ’서비스 등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또한 IBK기업은행이 지난 6월에 선보인 i원뱅킹도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측도 “기존 은행이 별도의 인터넷은행전문은행 인가를 받지않더라도 이와 유사한 컨셉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인가를 별도로 받지않더라도 비대면 본인확인인증 등 새로운 프로세스를 추가함으로써 인터넷전문은행이 제공하는 금융서비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은행이 지난 5월부터 선보인 ‘위비뱅크(WiBee Bank)’는 별도의 자회사가 아니라 단순한 모바일뱅킹서비스 브랜드이다. 당초 우리은행이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비해 경험과 수익모델 검증을 위해 만들어 본 테스트 베드(시범모델)의 성격이 크다.
하지만 기존 은행들에 대해선 인터넷전문은행 인가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우리은행도 현재로선 ‘위비뱅크’를 본 사업으로 전환, 확대시켜나갈 가능성이 높다. 따로 생각해놓은 전략이 없다면, 우리은행으로서는 의외로 반응이 괜찮았던 ‘위비뱅크’ 홍보효과를 그대로 살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역시 ‘위비뱅크’ 에서 핵심적으로 주목해야할 것은 중금리 대출, 간편송금 서비스 등 금융상품의 포트폴리오이다. 우리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상품들인데, 현재까지는 기존 은행권의 상품들보다는 금리구조, 대출의 편리성 등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위비 모바일 대출’의 경우 SGI서울보증과 협약해 최대 1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타행 공인인증서로도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고, 본인 확인 은 휴대전화 사진촬영을 통한 비대면 방식을 선택했다. 간편송금 서비스인 ‘위비 모바일 페이’는 한번만 핀번호를 등록하면 추가로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가 없이도 하루 최대 50만원 범위 내에서 계좌이체가 가능하다. 송금인이 의뢰금액을 위비뱅크 보관함에 보관하면, 휴대폰·카카오톡·페이스북 등을 통해 친구에게 메시지가 전달되고, 송금 내역을 전달 받은 수취인이 보관함에서 찾아갈 수 있다.
한편 하나금융이 지난 1월 캐나다에서 먼저 오픈한 원큐뱅크(1Q Bank)서비스의 경우도 인터넷전문은행 모델의 선제적 서비스라는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다. 휴대폰을 이용한 P2P 자금이체 등 서비스의 차별화는 물론 캐나다 최초로 휴대폰를 이용한 자금 이체, 비대면 채널을 통한 선불카드 발급, 스마트폰 전용 자유 적립식 적금 등 서비스 등 금융상품의 다양성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물론 은행입장에선 편의성만 중요한게 아니라 리스크관리 툴도 동시에 중요하다. 원큐뱅크를 이용하려면 먼저 하나은행의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에 자동승인 대상자로 판정을 받아야한다.
최근 외환은행과의 조기합병 결정으로 하나금융의 원큐뱅크서비스는 외환송금, 환전 등 외환부문의 서비스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큐뱅크는 국내 은행의 해외 현지법인이 설립한 회사라는 점에서 단순히 인터넷뱅킹서비스 브랜드는 아니다. 하나금융의 경우처럼 해외 현지법인 또는 글로벌 거점을 통해 인터넷뱅킹서비스 모델을 구체화한다면 IT측면에서의 대응도 필요하게 된다. 기존 은행권에서 운영하던 국외전산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이와관련 하나금융그룹의 IT계열사인 하나아이앤에스는 국내가 아닌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인터넷뱅킹서비스 시장을 염두에 두고 코어뱅킹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올해 개발 완료한 상황이다. 글로비스로 명명된 이 코어뱅킹 플랫폼은 하나금융이 글로벌시장 기반의 인터넷은행 모델을 추구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BK기업은행이 지난 6월 선보인 'i-원(ONE)뱅크' 서비스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예적금, 펀드, 대출 등 200여개 금융상품을 연중 24시간 가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모바일 채널을 통해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은 30여개에 불과했다. 이 모델 역시 기업은행측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응해 시범 모델로 개발한 것이다. 은행 창구에서 취급하는 모든 상품을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비대면 방식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점 등 편의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대출상품 구성은 빈약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계좌이체, 조회 등 기존 스마트뱅킹 서비스는 물론 화상·채팅상담, 개인별 맞춤형 상품추천, 은퇴설계 및 자산관리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여기에 교통카드 충전, 바코드결제, 간편송금 등 고객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지급결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은행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응해 i-원뱅크를 육성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기업은행은 기존 자사의 스마트금융 서비스 브랜드인 ‘IBK 원(one)뱅킹’을 ‘i-원뱅크’로 통합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스마트금융 브랜드 전략을 통폐합함으로써 이 부분에 더욱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결국 은행권이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안으로 준비하고 있는 ‘인터넷은행 서비스’의 성패는 금융상품의 차별화를 통한 수익성과 함께 적절한 리스크관리시스템을 통한 안정성 확보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인식은 이제 국내 은행권에선 공감대가 넓게 형성돼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금융IT전문가들도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들의 e뱅킹 인프라가 워낙 잘 갖춰져있기때문에 편의성 경쟁에선 거의 차별화가 어려울 것”이라며 “혁신적인 금융상품의 개발 등 금융서비스의 본질적인 부문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인터넷전문은행 vs ‘인터넷은행’ 특화서비스...직접경쟁? =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만 놓고보면, 인터넷전문은행과 기존 은행의 e뱅킹서비스가 직접 경쟁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현재 은행권은 ICT기업들의 주도로 설립될 인터넷전문은행들이 향후 기존 은행의 사업영역을 침범할 것이란 전제하에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즉, 우리은행의 ‘위비뱅크’ , 하나금융의 ‘1Q뱅크’와 같이 은행권이 다양한 모델을 준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기존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는 수성전략의 일환이다.
물론 서비스의 품질, IT인프라의 안정성, 브랜드의 신뢰성 등 여러가지 지표에서 이제 갓 출범하게될 인터넷전문은행이 막강한 자본력과 마케팅수단, 안정적인 IT인프라를 앞세워 수성전략을 펼치고 있는 기존 은행권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현재로선 적어보인다.
인터넷전문은행으로서는 기존 은행권이 시도하지 않는 틈새시장 전략을 찾아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 오히려 은행권의 견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결국 은행권은 ‘위비뱅크’, ‘원큐뱅크’ 등 새로운 인터넷은행 서비스 브랜드를 출시하고 은행들끼리 서로 격렬하게 경쟁할 가능성이 커진다.
정작 이를 촉발한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경쟁과 관계없이, 국내 은행권 내부의 치열한 e금융서비스 전쟁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히려 링밖에서의 싸움이 훨씬 더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4년전 은행권에서는 ICT 인프라를 총동원한 스마트브랜치(Smart Branch) 광풍이 불은적이 있는데 어떻게보면 현재의 분위기는 그 당시의 경우와 유사하다. 거의 모든 은행이 주요 거점에 차별화된 스마트브랜치 전략을 선보였지만 수익성측면에서 이렇다할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높은 임대료 등 ROI(투자대비효과)가 받쳐주질 못했다.
물론 스마트브랜치와는 최근 은행들이 준비하고 있는 ‘인터넷은행 서비스’는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오히려 브랜드를 알리고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해야한다는 점에서 마케팅 비용은 스마트 브랜치 보다 훨씬 더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비대면금융서비스 전략의 고도화에 초점 = 겉으로는 서비스 선점 경쟁이 치열한 것 같지만 실제로 국내 은행들은 기본적으로 2위 전략을 중시한다. 최근 은행권에서 선보인 새로운 형태의 e뱅킹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동반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보다는 안정적인 2위 전략을 통해 시장을 지키는데, 현재의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차세대 e뱅킹(인터넷은행) 서비스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위해서는 은행 IT인프라의 ‘스마트화’는 필수적인 선행과제로 꼽힌다. 빠르고 안전한 계정처리, 최신 사용자 환경(UX), 모바일 중심의 뱅킹 환경 구현 등이 그것이다.
부산은행은 지난 2014년11월, 200억원 이상 투입해 완성한 차세대 e뱅킹시스템의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차세대 e뱅킹시스템 재구축 등 최근 3년여간 스마트금융 인프라 구축에 적지않은 IT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다양한 차세대 e뱅킹서비스를 지원하기위한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의 완성도는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현재 수준보다 5배 이상 거래가 늘어나도 감당할 수준은 된다.
앞서 은행측은 프로젝트에 앞서 2013년7월부터 8월까지 딜로이트로부터 비대면채널 강화를 중심으로 한 컨설팅을 2개월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은행측이 컨설팅을 통해 가장 얻고자했던 것은 차별화할 수 있는 특화된 서비스였다. 이를 위한 e CRM과 연계된 고객 맞춤상품 추천, 금융상품몰 서비스 강화 전략이 도출됐다.
어쩌면 인터넷전문은행은 이후 핀테크 바람들 타고 날아온 외형일뿐 금융서비스 본질에 대한 고민, 즉 비대면금융전략에 대한 고민은 이미 오래전부터 은행 내부적으로 신중하게 고려됐음으로 알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은행들간의 새로운 e뱅킹 서비스 경쟁에 대응하기위해 추가적인 IT인프라 확충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부산은행 스마트사업부 관계자는 “앞으로 비대면 본인인증 확인 방식으로 신규고객 모집이 가능해지게됨에 따라 비대면본인인증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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