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금융 서비스 혁신과 고객 편의성을 강화하기 위한 ‘핀테크’ 접목 및 육성에 은행권이 나서고 있지만 정작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운영체제 출시 앞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는 29일 차세대 PC 운영체제 윈도10 배포에 나섰다. 기존 윈도7과 윈도8 사용자에겐 1년간 한시적으로 무료로 제공해 기존 사용자의 윈도10 전환을 강력하게 유도하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대응행보=그동안 금융권, 특히 은행권에선 MS가 새로운 운영체제와 브라우저를 선보일 때 마다 호환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 2009년 10월 MS가 윈도7을 선보였을 땐 이미 국내 시중 금융기관 중 15개 기관이 호환성을 확보했으며 아직 확보되지 못했던 6개 금융 기관 역시 출시 1개월 안에 호환성을 확보했다.
마찬가지로 2012년 윈도8이 출시됐을 때도 금융권을 비롯해 주요 기업의 90%가 출시시기에 맞춰 윈도8에 대한 호환성을 확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윈도10 출시를 두고 은행권은 사실상 선제적 대응에 손을 놓은 상태다.
물론 한국MS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호환성 센터를 만들고 은행, 증권, 보험 등 주요 금융기관을 비롯해 공공, 대기업 등을 대상으로 익스플로러11 호환을 위한 모듈을 만들어 이미 배포를 완료한 상태다.
문제는 윈도10에 포함된 엣지 브라우저(Microsoft Edge)다. 윈도10은 두개의 인터넷 브라우저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11’은 기존 웹사이트와 호환성을 유지해 인터넷뱅킹, 온라인결제 등의 이용이 가능한 인터넷 브라우저이며 엣지 브라우저는 모바일 및 클라우드 환경에서 가볍고 빠른 인터넷 탐색 기능을 제공하는 브라우저다.
다만 윈도10은 엣지 브라우저가 기본 브라우저로 설정돼 있어 인터넷 익스플로러11을 사용하기 위해선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시중은행의 인터넷뱅킹을 정상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11을 사용해야 한다.
익스플로러11에서만 인터넷 뱅킹이 가능한 이유는 엣지 브라우저에선 국내 은행이 보안솔루션으로 사용하고 있는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엣지 브라우저를 이용하면 인터넷 뱅킹 홈페이지에 접속이 안 되거나 접속이 되더라도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엣지 브라우저에선 플러그인 형태의 모듈 지원이 불가능하므로 한국MS가 호환성 확보를 위한 모듈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엣지 브라우저에서 인터넷 뱅킹이 가능하게 하려면 은행과 보안업체들이 비 액티브엑스 방식의 모듈을 개발하거나 웹표준을 준수하는 보안 기능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
◆오픈뱅킹도 무용지물=물론 인터넷익스플로러11에선 여전히 인터넷 뱅킹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는 금융고객의 경우 그동안 PC기반의 금융 서비스 환경에 익숙해져서 예전처럼 운영체제가 바뀌었다고 뱅킹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윈도10의 경우 엣지 브라우저를 익스플로러 11로 전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현재 은행들은 익스플로러11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기 위해 ▲MS 엣지로 접속 후 인터넷익스플로러로 전환 ▲기본 브라우져 설정을 변경 후 인터넷익스플로러로 접속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접속하는 방법 등을 공지하고 있다. 하지만 PC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금융고객의 경우 초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도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MS가 내년부터 각 OS에서 지원하는 최신버전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대해서만 보안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엑티브엑스에 대한 지원도 중단할 계획이어서 은행권으로선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운 웹표준 준수(HTML5) 방식의 인터넷 뱅킹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은행에선 다양한 브라우저와 PC에서 인터넷 뱅킹을 지원하기 위한 오픈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오픈뱅킹 서비스 역시 엣지 브라우저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오픈뱅킹의 경우도 일부 플러그인이 설치되기 때문에 (엣지를)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MS가 액티브엑스를 떠나 실행파일 설치 자체, 즉 플러그인을 막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현재 솔루션으로 대응하기는 곤란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오픈뱅킹을 통한 엣지 브라우저 테스트를 해봤는데 조회서비스는 되는데 공인인증서 이용이 막혀 있다”며 “실행 프로그램을 깔아야 되는데 이를 막았기 때문에 오픈뱅킹에서도 사용이 어렵다”고 전했다.
특히 은행권에선 오픈뱅킹에서 엣지 브라우저 이용이 가능하더라도 현재 오픈뱅킹 이용이 조회 및 이체서비스에 특화됐기 때문에 인터넷 뱅킹 서비스 전체를 대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은행권에선 엣지 브라우저 뱅킹을 지원하기 위해 범용 실행파일(exe)을 통한 보안 솔루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솔루션 개발에서 적용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시중은행 IT기획부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기 위해선 PC에 10개 내외의 선택 및 필수 프로그램이 설치되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까지 다 테스트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은행권, 현실적 어려움 토로=업계에선 매번 MS의 새로운 운영체제와 인터넷 브라우저가 출시될 때마다 호환성 확보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기회에 HTML5와 같이 웹표준을 준수하는 뱅킹 시스템을 만들어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은행권에선 이것 또한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시중은행의 한 채널전략 관계자는 “범용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오픈뱅킹인데 현재 은행들이 오픈뱅킹을 별도 채널로 운영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 뱅킹 시스템을 통으로 오픈뱅킹으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은행들이 인터넷 뱅킹 시스템을 웹표준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시스템 재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중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범용 실행파일(exe) 방식으로 엣지 브라우저에 대응하고 있는 것도 기존 뱅킹 시스템을 웹표준으로 전환하는데는 별도의 의사결정과 예산 등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뱅킹 시스템을 HTML5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사실상 차세대 사업이 불가피하다”며 “최근 농협은행의 e뱅킹 고도화 사업의 경우 300억원이 소요됐는데 HTML5 기반으로 어느 정도 비용이 산정될 지도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은행권이 파악하고 있기론 HTML5를 지원하는 뱅킹 보안 솔루션의 숫자도 적을뿐더러 안정성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인터넷 뱅킹은 사실상 은행 홈페이지와 동일한 개념으로, 기존 인터넷 뱅킹과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던 모든 서비스가 구현돼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웹표준을 준수하는 인터넷뱅킹 시스템 구축 필요성에 대해서는 은행권이 공감하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것으로 또 다른 문제라는 입장이다.
핀테크를 통해 금융 오픈 플랫폼 구축, 일부 금융 서비스 오픈 등 은행들은 혁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앞선다고 자부하던 인터넷 뱅킹 시스템은 MS의 새로운 운영체제와 브라우저 앞에 민낯을 드러냈다. 혁신은 혁신대로 추진하되 기존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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