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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엘피다의 벼랑 끝 전략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D램 가격 반등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1분기, 혹은 2분기에 값이 오르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곤 했다. 보인다거나 전망한다는 단어 대신 굳이 ‘희망’이라는 단어를 권 사장은 썼다.

반도체 시황은 세계 경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다 보니 섣불리 전망할 수 없다는 게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D램 전략을 잘 아는 이들은 “정말 그 시기까지 반도체 값이 오르길 원치 않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권 사장은 작년 4분기에 올해 2분기 D램 가격 반등을 ‘희망’했다.

삼성전자가 찍어내는 D램 원가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앞선 미세공정전환으로 원가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반면 공급량은 최고 수준이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경기에 맞춰 공급량을 조절해 나는 남고 너는 적자보는 골든 프라이스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40%지만 50%, 60%가 넘어가면 인텔처럼 굳이 희망하지 않아도 생각대로 시장을 이끌 수 있다. 이런 때가 오면 당장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희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원하는 가격이 오래오래 유지되어야 독일의 키몬다처럼 후발업체들이 떨어져나간다.

미세공정전환이 늦은 일본 D램 업체 엘피다는 코너에 몰렸다. 엘피다는 1분기 7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40나노대 D램을 주력으로 이익을 남겼다. 엘피다는 아직도 50나노대가 주력이다. 40나노대가 주력으로 올라왔다면 적자 보는 일이 없었어야 했다.
저쪽은 이익인데 넌 왜 적자보냐고 묻는 투자자를 어찌 상대했을까.

엘피다는 25나노 D램 개발에 성공했고 7월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과 기술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엘피다가 망할 징조”라고 평가했다. 40나노대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30나노를 건너 뛰어 20나노대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엘피다가 25나노 양산 노력을 하면 할 수록 재정은 악화되고 이는 곧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공급 과잉 시대에, 대만의 경쟁력 떨어지는 팹 인수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엘피다이기도 하다. D램 가격이 바닥인 현 시점에 경쟁력 떨어지는 팹 인수는 수익이 아닌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 1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0.5가 된다는 것이다.

하이닉스 권오철 대표가 엘피다의 수장이었다면 흩어진 공장을 한 곳으로 모으고 고정비를 낮췄을 것이란 생각
이지만, 엘피다는 다른 방법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25나노 발표와 대만 업체를 통한 몸집 불리기는 일본과 대만 정부의 국가 기금을 이용하고 증자 등을 통해 재무적으로 위험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라는 것 외에는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없다.

기술력에서 일본에 추월당한 것이 아니냐며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있지만 오히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내부 관계자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세계 반도체 업계에 빅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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