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보민기자] 국내 대표 보안기업 안랩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과거 보안 선두주자가 없던 한국 시장에서 '연구소'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은 자회사를 갖춘 그룹사로 성장했다. 1000억원 이상 매출을 내는 몇 안 되는 국산 보안기업이기도 하다.
안랩의 지난 30년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최초를 인정받은 순간과 바이러스 위기를 기회로 승화했던 순간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차세대 보안 시장에서 대표 기업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한 도전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 백신 개발 후 유료화 성공…'CIH 바이러스 유입' 전환점
안랩의 역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을 밟던 안철수 창업자(국민의힘 의원)는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프로그램 '백신'을 개발했다. 국내로 유입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누구나 치료할 수 있게 돕겠다는 취지로, 당시 안 창업자가 개발한 백신은 지금 안랩의 주요 제품군 'V3'의 전신이 됐다.
이후 안 창업자는 낮에 의학을 연구하고 밤에 백신을 개발하는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약 7년이 지난 1995년 3월, 안 창업자는 두 명의 직원과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했다. 1995년은 눈에 띄는 국산 보안기업이 없던 때로, 이 틈을 노려 외산 기업의 공세가 거세지던 해였다. 보안에 투자하는 대기업과 정부기관도 없었던 만큼, 연구소 설립은 공익적 도전이었다.
연구소는 바이러스 백신이라는 강점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했다. 프리웨어로 등장한 V3를 셰어웨어로 전환했고, 통신망을 통해 V3+를 공식 발표하며 정보기술(IT) 기업을 대상으로 공급 성과를 올렸다. 연구소는 상용 제품인 패키지를 출시해, V3를 유료화하는 데 집중했다. 당시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 무료 제품을 유료화한다는 개념이 생소했고, 기존 고객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안 창업자는 유료화를 선언하던 시점, 주장을 굽히지 않고 안티바이러스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1999년, 대만에서 창궐한 원도2005 대상 바이러스 CIH가 국내에 유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빠른 속도로 퍼진 이 바이러스는 컴퓨터를 무력화시키며, 안티바이러스 시장을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연구소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CIH 사건을 계기로 1999년 연구소는 1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유료화를 선언했을 당시만 해도 별다른 실적이 없었는데, 바이러스 위협을 발판 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CIH 바이러스 위기를 계기로, 연구소가 국내 사용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료 백신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인식하고, 보안 소프트웨어를 금액을 지불하고 사용하도록 하는 선구적인 사례를 만들었다는 취지다.
유의미한 매출이 생긴 1999년, 연구소는 설립 이래 처음으로 임직원 단체 사진을 찍었다. 창립 4년 뒤에야 단체 사진을 찍은 이유에는 '언제 회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안 창업자의 불안감과 걱정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1999년에는 '앞으로 최소한 다음 해까지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안랩은 지금까지 창립기념일에 맞춰 전 직원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외국에 자리 내줄 수 없다" 상장·글로벌 사업으로 외연 확장
연구소는 CIH 바이러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98년, 미국 보안기업 맥아피의 천만달러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한국의 사이버보안 기술 주권을 지키겠다는 뚝심이 이어진 것이다. 대신 주요 기술 개발과 제품 출시를 이어가며, 한국 대표 보안 기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그 일환으로 2001년, 국내 보안기업 중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해 벤처 기업 성공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에는 글로벌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2002년 안랩재팬(AhnLab Japan)을 설립해 글로벌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고, 현지 맞춤형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2003년에는 중국 수도 베이징에 안랩차이나(AhnLab China)를 설립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기반으로 현지 제조기업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이 성과로 꼽힌다.
이후 2000년대에는 V3 제품군을 고도화하는 데 임직원들이 의기투합했다. 2000년은 휴대전화가 대중화하며 새로운 보안 위협이 포착되던 시기로, 안랩은 2003년 휴대전화용 백신 'V3 모바일 포 WI-TOP'을 선보였다. 2005년에는 네트워크 방화벽 '안랩 트러스가드'를 출시했고, 2007년에는 보안관제 및 컨설팅 서비스를 확장하며 백신을 넘어 추가 사업 모델을 확보했다.
보안 위협을 사업 기회로 전환하는 움직임은 계속됐다. 2009년 분산서비스거부(DDoS·이하 디도스) 대란이 발생했을 당시, 밤샘 비상 대응과 전용 백신을 배포해 국가적 사이버 재난을 극복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 디도스 대란으로 청와대, 국회, 국방부 등 주요 기관이 마비되는 일이 발생한 바 있다. 이후 디도스 대응 솔루션 '트러스가드 DPX'를 출시하기도 했다.
안 창업자는 외국 보안기업에 국내 시장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의지를 이어갔다. 안 창업자는 2010년 공채 신입사원을 만난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은 자기 실력으로 살아남는 건강한 구조에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며 "이런 환경을 타파하려면 외국에 자리를 내주기 전, 우리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안랩이 연구소에서 안랩으로 사명을 공식 변경한 시점은 2012년이다. 지금은 안 창업자 체제가 아닌,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한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안랩은 지난해 기준 매출 2606억원과 영업이익 277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보안업계에서 2000억원이 넘는 매출 실적을 내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연구소에서 그룹사로 탈바꿈에도 성공했다. 안랩은 제이슨, 나온웍스, 안랩블록체인컴퍼니, 안랩클라우드메이트 등 자회사를 두고 있다. 제이슨은 인공지능(AI) 기반 관제시스템 기업, 나온웍스는 운영기술(OT) 보안 기업, 안랩블록체인컴퍼니는 블록체인 전문 기업이다. 안랩클라우드메이트는 클라우드운영관리서비스(MSP) 업체다.
안랩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 창업자는 지난 14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안랩 창립 30주년 행사에 참석해 "30주년을 맞은 오늘,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함께 사는 사회에 기여하는 초일류 기업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강석균 안랩 대표이사 또한 재도약의 기회를 찾자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안랩을 누구와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월드 클래스' 기업으로 만들어 매출 3000억, 5000억원을 넘어 1조기업으로 도약하자"고 독려했다.
'월드 클래스'를 강조한 만큼, 올해 안랩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지 지켜볼 부분이다. 안랩은 2013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사업 부진 끝에 철수를 결정했고, 현재 새 먹거리로 중동 시장을 공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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