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전기차 시장의 수요 일시적 정체기(캐즘)가 길어지면서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영위해왔던 LG에너지솔루션, SK온이 폼팩터 다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파우치 특유의 안정성과 가격이 걸림돌이 되면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확보할 필요가 있어서다. 또 46파이(지름 46mm) 등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가 대량 양산 및 적용 시기 면에서 더딜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각형을 향한 수요가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모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은 각각 각형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각형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이를 공급하기 위한 고객사와의 논의도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온은 올해 초 원통형 배터리 개발에 집중했던 인력을 각형에 투입해 고객사와의 논의를 진행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양사는 전기차용 배터리로 파우치 타입을 낙점하고 관련 수주 확보에 주력해왔다. 파우치형 배터리가 전기차 주행거리, 차체 디자인 자유도 면에서 높은 이점을 가지고 있는 덕이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얇은 알루미늄 필름에 압착된 전극을 채운 배터리로, 폼팩터 중 가장 높은 에너지밀도와 낮은 무게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소비자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보급형 전기차 출시 등 전기차 출시 단가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배터리 개발 트렌드가 주행거리에서 충전속도로 바뀌면서 파우치형 배터리의 매력도가 떨어지게 됐다. 원통형·각형과 달리 가스 배출구가 없어 배터리가 부풀어오르는 현상(Swelling)에 취약한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파우치 배터리를 택한 LG에너지솔루션의 최근 폴란드 가동률은 전체 생산능력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추정된다. 폴란드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이 약 86GWh인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실적 타격이 있는 셈이다. SK온 역시 헝가리·중국·미국 등 주요 글로벌 거점 가동률이 저조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각형은 사각형 캔에 배터리 전극을 담는 구조로 외관이 단단해 화재 위험성과 가스 배출 등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와인딩으로 제작됐던 전극도 잘라서 쌓는 적층(Stacking) 방식으로 바뀌며 에너지밀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모듈이나 플랫폼 설계를 생략한 셀투팩(CTP)·셀투샤시(CTC)·셀투바디(CTB) 등을 적용할 때 곧바로 탑재할 수 있다는 이점도 주목받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양사가 장기적인 관점으로 각형 배터리 개발에 나선 것으로 봤다. 주력해 온 파우치형 배터리로만 향후 전기차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포트폴리오를 늘려 고객사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는 의미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배터리의 안정성을 요구하는 자동차 업계 내 목소리가 많아졌고, 이에 따라 배터리 업계가 각형 개발 비중을 높인 것"이라며 "시장 캐즘을 돌파할 대안이 이미 여럿 거론돼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돌파구가 각형으로 꼽히고 있어 우선순위를 이 분야에 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파우치형 배터리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고전압 미드니켈과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인 46파이 규격 개발 양상은 지속될 것으로 봤다.
고전압 미드니켈은 기존 4.2V 가량인 충전 전압을 4.5V 가량으로 높인 배터리다. 충전 전압을 높이면 에너지밀도를 일부 높이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비교적 단가를 낮춘 니켈 함량 60% 양극재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전극 균열 등을 막기 위해 단결정 양극재 비중을 높여야 하고, 값비싼 코발트 함량을 낮추는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은 내년부터 미드니켈 파우치형 배터리 등을 고객사에 납품할 계획을 세웠다.
46파이 배터리는 연내 양산이 유력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를 개발하고 있으며, 오는 8월부터 오창 공장에서 양산할 예정이다. 다만 초기 생산수율 최적화 문제와 용접·전극 안정화, 대량 생산능력 확보 등을 고려했을 때 본격적인 시장 개화 시기는 내년 말쯤으로 예상되고 있다. SK온은 올해 초 46파이 개발에 집중해왔으나, 더딘 수요 등을 고려해 각형으로 인력을 대거 배치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프로젝트성 수요인 점을 고려하면 매출 확대의 팩터는 여전히 전기차가 될 것"이라며 "현재 미국 대선 리스크와 하이브리드차량(HEV)·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 득세 등 위험이 상존한 만큼, 올해는 배터리사들이 내실을 쌓는 데 집중하는 시기로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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