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나연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산학계 반발에 부딪힌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이하 플랫폼법)’에 대한 재검토 의사를 밝힌 지 약 한 달 만에 또다시 플랫폼법에 대한 추진 의지를 밝혔다. 업계의 반발도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모습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최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원사 대상 특별 강연에서 플랫폼법을 포함한 올해 공정위의 주요 업무 방향을 설명했는데 같은 날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가 공식 성명서로 우려를 표했다. CCIA는 구글·애플·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를 회원사로 둔 단체로, 이들 기업은 한국의 네이버·카카오와 함께 플랫폼법의 유력 후보로 꼽힌다.
실제 구글·애플·메타 등은 지난 1월부터 이번 행사에 이르기까지 공정위의 플랫폼법 관련 설명회에 매번 불참해 왔다. 업계는 이같은 빅테크 행보가 플랫폼법에 항의하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공정위가 작년 12월부터 띄운 플랫폼법은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 기업을 사전에 지정, 끼워팔기·자사우대·최혜대우·멀티호밍(다른 플랫폼 이용) 제한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지정 기준이나 대상 기업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찍이 국내 업계는 지배적인 플랫폼 사업자 지정 및 사전규제가 ‘낙인효과’를 일으키고, 스타트업 등 플랫폼 생태계 혁신 동력마저 저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 정부가 제시한 민간 자율 존중 원칙과 배치된다는 지점도 함께 지적된다.
특히 미국에선 플랫폼법이 국가 간 통상 마찰로 번질 가능성을 비판하고 있다. 플랫폼법이 미국의 디지털 수출을 겨냥하고 있어 미국 기업과 근로자, 소비자에도 불이익을 줄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다. 클리트 윌렘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플랫폼법이 현실화하면 무역확장법 301조(불공적 교역 관련 구제조항) 발동 등 양국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론이 이렇다 보니, 공정위는 법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추가로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법안 초안 공개 시기를 잠정 연기한 현재까지 국내외 할 것 없이 공정위와 실질적으로 소통 중인 플랫폼 기업은 없는 듯 하다. 공정위가 여전히 국내 기업들과의 만남을 적극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업계 안팎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명확한 내용이 부재한 상태에서 정부가 입법 의지를 재차 강조하는 건 업계에 혼란과 불안만 가중할 뿐이다. “플랫폼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가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다”라는 강한 발언도 말뿐인 소통과 부족한 설득력 앞에서 무너지기 쉽다. 플랫폼 입점 사업자 단체와 벤처·스타트업 업계, 소비자단체, 국회입법조사처 심지어 미국 정치권과 업계까지 연달아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지 공정위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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