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직장다니는 홍길동(가명.52)씨 가족도 올 추석에는 3남1녀 형제들이 고향 경기도 가평을 찾았다. 형제들이 이렇게 다 모인 것은 2년만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다 모일 수가 없었다.
미디어에서 하도 많이 떠들었기 때문일까.
공부, 취업, 결혼, 다이어트 등은 이제 암묵적 ‘금기어’가 됐나보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다.
거실 벽면을 가득채운 TV화면에는 ‘서울‧수도권 아파트값 계속 하락’이라는 뉴스 채널의 자막이 시차를 두고 무심하게 반복된다.
‘영끌한 사람들은 걱정이겠지만 빚없으면 어차피 오르거나 내리거나 상관있나.’
누군가가한마디 꺼낸다.
공교롭게도 서울 및 수도권, 충청도 등 지금 사는 곳은 각각 다르지만 모인 가족들이 현재 모두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무리 가까운 형제간이라도 얼마나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샀는지 속사정까지는 자세히 모른다. 최근 급등하는 금리 때문에 뭐라 함부로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결국 ‘아파트 값’을 주제로 얘기 꽃이 피었다.
얼굴 붉히는 ‘정치’ 주제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작년 추석때, 연일 오르던 집값때문에 내심 모두들 흡족했던 분위기와는 정반대다.
“우리도 이제 일본처럼 집값이 떨어질까”, “금리가 장난이 아니다”, “설렁탕도 1만원하는 시대에, 물가를 보면 아파트값이 크게 폭락할 것 같지도 않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데 지금도 너무 (아파트를)많이 짓는 것 같다” 등등 최근 언론 매체들을 통해 한 두 번씩 들었봤을만한 얘기들을 쏟아낸다. 물론 결론이 있을리 없다.
‘아파트값’ 얘기는 그렇다치고, 주식으로 얘기 주제가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너나 할 것없이 한숨이 커졌다.
‘다른 건 몰라도 삼성전자는 계속 모아가야하는 주식’이라고 평소 강변해왔던 큰 형님은 올해는 좀 머쓱해졌다. 작년 추석연휴 직전에 7만7200원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젠 5만5600원(8일 종가 기준)으로 주당 2만원 이상 빠졌다..
‘주식은 답답하다’며 코인에 적지않은 돈을 담궜던 둘째는 아예 입을 닫았다. ‘혹시 지금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볼 엄두도 안난다.
그나마 셋째는 상대적으로 표정이 편하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평단가는 현시세보다 여전히 저조하지만 원화 환산금액으론 거의 손해를 보지않았다. 테슬라와 아마존 주식을 약 50%씩 가지고 있는 셋째는 전형적인 서학개미다.
실제로 작년 추석과 올 추석, 일년만에 증시 지표는 ‘폭락’ 말고는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작년 9월17일, 추석 연휴에 들어가기 직전 코스피 지수는 3140.51 코스닥 지수는 1046.12로 종료했다.
그런데 올 추석 연휴를 앞둔 9월8일 여의도 KRX 전광판에 찍힌 코스피 지수는 2384.27, 코스닥 지수는 771.81이었다.
불과 일년만에 코스피 지수는 756.23 포인트, 코스닥은 274.31 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하락율로 보면 각각 –24.7%, -26.2%에 달한다.
적어놓고 보면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이 숫자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 고생'이 녹아있을지 상상하기 싶지 않다.
지난 1년새 러-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금리 인상과 증시 폭락, 원-달러 환율의 급등 등 여러 저런 이유로 거시경제(매크로) 지표가 계속 악화돼왔다.
◆원-달러 환율, 작년 추석전 1184.00원→ 현재 1383원 (8일 종가기준)
우리 나라 거시경제 지표의 암울함을 가장 실감나게 표시하는 것이 ‘원-달러 환율’이다. 한국 경제에 ‘환율’은 단순한 거시지표가 아니라 특정 범위를 넘어가면 ‘국가적 위기’라는 트라우마로 돌변한다.
원-달러 환율이 1800원대까지 치솟았던 1998년 IMF 외환위기, 1500원대 까지 급등했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그 이후 13년5개월만에 1383원(8월 종가기준)을 돌파해 최근 140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작년 이맘때 원-달러 환율은 1184.00원이었다. 1년새 1달러당 119원 급등했다.
올 하반기에도 에너지 등 수입물가는 물론 경상수지 관리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또 다시 시작될 일상의 고단함이 두렵다.
그래도 항상 그렇듯이 미래는 기대반, 걱정반이다. “그래도 뭐 괜찮겠지, 걱정하지 말어”, 큰 형님의 덕담이 그래도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