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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캐릭터니까 괜찮아?” 디지털성범죄 기승, 게임업계 “대책 無”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 지난해 20대 여성 A씨는 게임을 하기 위해 접속한 채팅방에서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다른 이용자에게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고 싶다”는 등 성희롱 메시지를 받은 것. A씨는 가해자를 고소하러 경찰서를 찾았으나 고소장은 접수되지 못했다. 해당 발언을 게임 캐릭터에게 한 말로 볼 수 있어 실제 이용자에 대한 성폭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 지난 2월 메타 자회사 호라이즌은 가상현실(VR) 소셜 메타버스 플랫폼인 ‘호라이즌 월드’에 아바타 간 거리 유지 기능을 도입했다. 베타테스트 과정에서 한 이용자가 성폭행·성추행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피해자 B씨 아바타는 가상현실에서 여러 명의 남성 아바타에 둘러싸여 집단 성폭행당한 뒤 성희롱까지 당했다. B씨는 “남성들이 음성 채팅으로 ‘싫어하는 척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며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경험이자 악몽이었다”고 말했다.

22일 디지털데일리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 ▲스마일게이트 ▲컴투스 ▲웹젠 ▲위메이드 ▲그라비티 등 국내 주요 게임사 10곳에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정책이나 관련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 있는지 문의했다.

취재 결과, 금칙어 설정 등 기본적인 정책 외에 추가로 구상 중인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디지털 공간에서 성적 모욕을 가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게임업계는 이렇다 할 대응이나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 발의, 게임업계 “일단 지켜보자”=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디지털 공간 내 성적 가해를 막기 위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을 지난달 15일 대표발의했다. 이는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TF)·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 권고안을 반영한 내용이다. 해당 법안에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성적 가해 행위를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담겼다.

앞서, 전문위는 제5차 권고안을 통해 현재 게임 캐릭터에 대한 성적 언동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같은 현행법만으로는 온라인상 다양한 성적 가해 행위를 제재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신 의원은 성적 인격권 침해행위를 정보통신망상 유통이 금지되는 정보에 포함하고, 플랫폼 사업자가 이를 관리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본회의 의결을 거쳐 실제 법적 효력을 갖기 전까지 게임업계가 선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정치권의 이 같은 법제화 시도에 게임사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이 현재 발의만 된 상태인 만큼, 당장 기업 차원에서 특정 조치를 취하기보단 진척 사항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게임사 사이에서는 법안 내용이 현재 이들 기업이 서비스하는 게임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시선도 있다. 크래프톤과 위메이드, 그라비티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이 “일반 게임보다는 가상현실(VR)을 통한 메타버스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제재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게임사들은 자체 정책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에 따르면 이용자가 불건전한 언어를 사용할 경우, 운영 정책에 따라 게임 이용 제한이나 채팅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컴투스 역시 “게임 채팅 시스템에 금칙어 기능을 도입해 음란성 표현을 포함한 비속어를 필터링하고 있으며 상시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라인‧교육 필요, 기업 목소리도 경청해야=전문가들은 입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가이드라인 마련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등 여러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과 교수는 게임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게임 캐릭터를 매개로 한 성추행, 성희롱은 20년 전 아바타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 문제”라면서 “그런데도 지금까지 처벌법이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 설정과 정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또, 김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이 통과될 경우 게임과 메타버스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법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기술적인 보완 장치가 필수임에도, 정작 관련 주체인 기업 입장을 경청하는 자리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실험적 시도와 혁신이 제약받지 않도록,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제재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의 한계를 언급하는 한편, 성인지 감수성 함양을 위해 제도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학회장은 “만약 게임 이용자가 개인 신상을 다 밝힌 상태에서 활동한다면 디지털 성범죄가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겠지만, 익명성이 강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완벽하게 막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전개하는 등 사전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온라인 익명성이 야기하는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 정부와 콘텐츠 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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