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정부가 통신3사 자회사들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겠다고 나섰지만 규제 실효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정부는 이들 자회사의 점유율이 5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400만이 넘는 사물인터넷(IoT) 회선을 포함해 산정하기 때문에 실상 IoT 회선이 적은 통신자회사들이 점유율 50%를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허울 뿐인 규제인 것이다.
통신자회사들의 점유율을 제한한다는 발상조차 일각에선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통신자회사들이 알뜰폰 시장 활성화에 기여한 점도 적지 않아서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2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월말 기준 통신3사 자회사들의 알뜰폰 휴대폰 회선 점유율은 49.9%에 달한다.
현재 SK텔링크(SK텔레콤 자회사), KT엠모바일(KT 자회사), 미디어로그·LG헬로비전(LG유플러스 자회사) 등 통신3사의 자회사들은 과기정통부의 사업자 등록조건에 따라 전체 알뜰폰 시장의 50% 점유율을 넘지 못하게 돼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통신자회사들은 사실상 12월인 현재 점유율 50%를 이미 넘었을 것이고, 정부 규제를 받아야겠지만 실상은 아니다. 양정숙 의원이 제시한 점유율 수치는 사물인터넷(IoT) 회선을 제외한 휴대폰 회선만 계산했을 때다. IoT 회선까지 포함하면 자회사들의 알뜰폰 점유율은 32%로 집계되기 때문에 아직은 규제와 무관하다.
문제는 이 IoT 회선이다. 현재 국내 알뜰폰 시장에서 IoT 회선 수는 409만개로, 전체(1007만개)의 40.6%에 달한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9월부터 차량제어서비스를 하려는 현대·기아차 등을 알뜰폰 사업자로 등록해 해당 가입자를 알뜰폰 회선(M2M)으로 분류하면서 IoT 회선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탓이다.
정작 통신자회사들의 IoT 회선 점유율은 6% 미만이다. 가입 회선이 합산 21만700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부의 등록조건 규제는 IoT 회선을 포함해 산정하기 때문에, IoT 회선 수가 적은 통신자회사들의 경우 사실상 점유율 50%를 넘길 일이 없다. 규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양정숙 의원실 역시 “등록조건 부여 당시와 달리 사물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알뜰폰 IoT 회선이 가파르게 증가해 현행 시장 점유율 산정방식으로는 통신자회사 점유율이 사실상 50%에 도달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통신자회사에게 등록조건으로 부여되어 있는 시장 점유율 산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통신자회사들에 등록조건을 부과할 때 이미 IoT 회선을 포함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아직은 (통신3사 자회사) 점유율이 정부의 50% 제한과는 무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IoT 회선을 포함하는 문제에 대해선 계속 검토 중이며 사업자들과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신자회사들의 점유율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 역시 시장 논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당장 이들로하여금 신규 가입자 모집을 중단하게 한다면 가입자가 중소 알뜰폰보다 통신3사로 옮겨가는 비중이 더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오히려 알뜰폰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실정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알뜰폰 1000만 시대에도 시장은 정체 상태로, 이를 확대하려면 규제보다는 활성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과도한 규제는 소비자 선택권을 저해할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알뜰폰 시장을 키우기 위한 좀 더 실효적인 상생 프로그램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중소 알뜰폰 업계 일부에선 통신자회사들의 점유율 제한, 심하게는 사업 철수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형진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회장은 지난해 10월 알뜰폰스퀘어 개소식 행사 당시 “통신3사 자회사들을 3년 내로 알뜰폰 시장에서 철수시켜야 한다”고 강경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회에선 통신자회사들의 점유율 제한을 보다 강화하는 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양정숙 의원과 김영식 의원(국민의힘) 등은 각각 통신3사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내 점유율이나 사업자 갯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