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 심사 및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입법 촉구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 쿠팡에서 건강식품을 팔고 있는 판매자 A씨는 매일 의도치 않게 최저가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소비자들 신뢰를 얻고 아이템위너가 되면 다른 판매자가 사업자명을 달리하고 가격과 배송기일을 조정해 의도적으로 ‘위너’ 자리를 뺏어가기 때문. 쿠팡에 매칭을 풀어달라고 문의도 넣고 해당 업체에도 경고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동시에 쿠팡에서 광고하라는 안내가 매일같이 오고 있어 A씨는 허탈할 따름이다.
#. 쿠팡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구매한 소비자 B씨는 최근 사기를 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쿠팡 검색창에 제품명을 입력하자 특정 판매자 상품이 상단 맨 처음 나타났다. 판매자가 해외구매대행 방식으로 판매한다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가격이 저렴했고 상당 분량 구매자 후기가 있어 상품을 주문했다. 이후 상품이 도착해 확인해보니 실제 상품은 구매한 것보다 가격·품질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는 하위 버전 모델이었다. 판매자에게 화가 나던 찰나 상품 사이트 후기는 알고보니 해당 판매자와 무관한 동일제품을 이용한 구매자들의 상품평이었다.
쿠팡 ‘아이템위너’ 제도로 피해 사례를 입은 판매자·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시민단체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속한 심사와 함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6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및 온라인을 통해 쿠팡 아이템위너 피해사례 발표 간담회를 열었다. 이달 초 참여연대가 쿠팡 아이템위너 관련 정책과 약관에 대해 공정위에 신고한 이후 신고 취지와 유사한 피해 사례가 다수 접수됐다는 설명이다.
쿠팡 아이템위너는 쿠팡에서 특정 상품을 검색했을 때 가장 저렴하고 평이 좋은 물건을 내놓은 판매자를 단독으로 노출하는 제도다. 쿠팡은 아이템위너가 광고비 경쟁 중심 기존 오픈마켓과 달리 소비자 경험을 중심으로 구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한 서비스라고 설명한다.
반면 시민단체는 아이템위너가 되면 고객 리뷰·상품 이미지 등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 시스템으로 사실상 판매자 간 최저가 출혈경쟁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아이템위너 허점을 이용한 악성 판매자들이 늘어나며 판매자·소비자 피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쿠팡 역할과 책임은 없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피해를 제보한 판매자 대부분이 최저가 경쟁 중이다. 특히, 동일 상품이 아닌 재질 및 디자인이 조악한 유사 제품을 속여 팔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아이템위너 ‘카테고리 매칭’을 악용해 상단 노출된 상품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동일 상품이 아니어도 매칭 시킨 후 가격을 조정해 아이템위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의류·패션잡화 등 분야에서 중국 판매자 상품 도용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판매자 고유 상품명, 판매자가 직접 제작한 상품 이미지·상세페이지 도용 사례가 빈번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부분 판매자들이 아이템위너라는 시스템을 알고 시작했지만 이러한 피해는 단순 경쟁이 아닌 악의적 도용인만큼 쿠팡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여성의류 판매자는 “국내에서 제작한 여성의류를 판매하고 있지만 다른 중국 판매자가 매칭을 걸어 가격 경쟁 중”이라며 “직접 촬영한 상품 이미지도 아이템위너 경쟁에서 밀리면 다른 판매자에게 넘어가고 아이템위너가 바뀌어도 사후관리(AS) 담당자는 최초 판매자로 남아 있거나 두 곳으로 올라가 다른 중국 판매자 제품 항의를 대신 받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쿠팡은 판매자들에게 이미지 등록 시 상품 이미지만 올릴 것을 명확히 안내하고 있으며 판매자들이 개별적으로 올리는 상세페이지 화면은 다른 판매자들과 공유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판매자들은 직접 제작한 상품이미지와 상세페이지 도용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기존 판매자가 직접 제품을 촬영하고 모델을 섭외해 촬영한 상품 이미지를 상세페이지에 담았어도 다른 판매자가 제목과 내용만 조금 바꾸거나 하단에 자신의 회사명만 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시민단체들은 쿠팡의 “고객들 평가 가운데 ‘상품평’과 ‘셀러평’을 명확히 구분해 관리하고 있으며 판매자에 대한 ‘셀러평’은 다른 판매자에게 이전되지 않는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상품평·셀러평 분리 작성은 소비자에게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는 관련 문제 발생 시 그 책임을 명확히 구분해 작성하지 않는 소비자에게 넘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애초 쿠팡이 다른 오픈마켓과 같이 판매자 저작권 보호를 위해 약관과 정책을 마련했다면 이러한 판매자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권호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는 “플랫폼 중개서비스 특성상 쿠팡이 플랫폼 전체적 통일성을 위해 이용자가 제공하는 상품 콘텐츠에 대해 어느 정도 편집·이용 등을 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면서 “그러나 개별 계약이 아닌 약관을 통해 이용자의 저작물 사용에 대한 허락을 받는 경우 플랫폼 제공자의 저작권 이용행위는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로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이달 초 쿠팡 아이템위너 제도에 대해 공정거래법·전자상거래법 등 위반 소지가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지난해 7월 쿠팡 여러 판매자가 이미 공정위에 관련 약관에 대한 불공정약관심사를 청구했지만 진전사항이 없자 다시 한 번 이를 촉구한 셈.
이날 좌담회에 참여한 이동원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총괄과장은 “약관심사에 더해 조치까지 나아가려면 전문가·경제학자 등 여러 분야 얘기를 듣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법안이 조속히 제정돼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쿠팡이 거래상 지위가 있는지 검토해봐야하는데 이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이 제정돼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현행 전자상거래법 역시 pc통신 시절 개념과 정의가 돼있어 현행에 맞게 반영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안나 기자>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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