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최근 몇몇 글로벌 IT업체들이 내놓은 홍보자료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여정’(journey, 旅程)이라는 단어다. 주로 클라우드 기반의 디지털혁신을 강조할 때 등장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도 그런 기업들중 하나다.
‘여정’이란 단어의 뉘앙스는 상당히 문학적이면서 감성적이다. 여기에는 또한 느림의 미학도 숨어있다. 그런데 초스피드, 초격차 혁신을 언제나 강조하는 IT기업들의 홍보 자료에 이런 단어가 박혀있으니 당연히 그 선명한 대조에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정’이란 단어를 왜 사용했는지 한국 지사 관계자에게 질문한적은 있으나 대답이 두루뭉술해서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여정’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을 굳이 옮긴다면 ‘다소 천천히 가더라도 결국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옳다’는 것이다.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진행된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1’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때문에 부득이하게 역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여개 국가 1959개 업체가 전시관을 꾸리는 등 규모면에서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전세계 동시접속자, 방문자, 조회기록 등 이번 CES 2021 행사 진행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수치들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큰 사고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CES 2021’ 행사의 성공적인 운영은 MS 역사의 ‘여정’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CES 2021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 기술협회(CTA)는 지난해 MS를 기술 파트너로 선정했다. MS는 이번 행사에 자사의 클라우드 플랫폼인 ‘애저(Azure)’를 활용해 전세계 어디에서도 온라인으로 행사 접속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지원했다.
MS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CES 2021를 성공적인 비대면 행사로 마칠 수 있었을까.
MS측은 자사 클라우드 플랫폼을 홍보하기위해 ‘애저’를 부각시키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은 역시 풍부한 비대면 온라인 행사의 경험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MS가 처음부터 비대면 온라인 행사에 특화된 기업은 아니다. MS도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전세계에서 수없이 진행해왔던 자체 대규모 컨퍼런스를 지난해 3월부터 온라인으로 전환해야했다. 수천명이 집결한 컨퍼런스를 통해 시장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왔던 MS 입장에서는 매우 긴급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였다.
무엇보다 MS측은 비대면 온라인 행사가 가지는 치명적인 단점, 즉 ‘관객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을 최대한 막기위해 대책을 서둘렀다. 그 결과 다양한 무대 연출가 등 연극영화 분야의 전문가와 스텝들을 총동원했다.
지난해 5월, MS는 그동안 시애틀에서 IT기술자들을 중심으로 진행해왔던 ‘빌드’(Build) 2020행사를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앞서 오프라인으로 열렸던 2019년에는 6200명이 참석했던 이 행사에 무려 19만7000명의 참석했다. 그리고 2019년 빌드참석자의 80%가 미국 출신이었지만 2020년 온라인 행사에는 68%의 참석자들이 미국 이외의 지역이었다.
물론 기존에는 300만원에 달하는 참가비를 무료 행사로 전환한 탓에 많이 몰린 이유도 있지만 MS측은 온라인이 주는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해방감과 잠재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2019년 행사에선 참석자 6200명중 아프리카 대륙에선 고작 28명의 개발자들이 참석했지만 온라인으로 전환하자 6044명의 개발자들이 참석했다.
이어 MS는 지난해 9월에 전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이그나이트(Ignite) 2020’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는 26만6000명의 IT 전문가가 참여했다. 이 행사 역시 MS의 비대면 온라인 행사의 기술력을 총동원됐다.
이 행사가 끝난후 2주만에 MS는 CES 2021 행사의 기술 파트너가 됐다. MS 스스로 “사상 최초의 디지털 CES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여정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실제로 그 결과는 긍정적으로 나왔다.
기술적인 완결성측면에서의 긍정적인 평가 뿐만 아니라 미국에 비행기 티켓을 구할 돈이 없어서 또는 참가비를 구하기 어려운 전세계 가난한 나라의 개발자들까지도 행사에 참여하고, 비전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역사적 진전이다.
현재로선 ‘CES 2022’는 다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어쩌면 사상 첫 비대면으로 치러졌던 CES행사는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CTA측은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행사를 디지털도 병행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CES 행사는 코로나19의 종식 여부와 관계없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두가지의 트렉이 생겼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생겼다.
‘CES 2021’ 은 MS의 역사에 아름다운 여정중 하나로 기록될 이벤트였다. '다소 천천히 가더라도 모두 함께 가는 것이 옳다'는 철학을 공유한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