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과거에는 망 이용대가를 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하며 “콘텐츠제공사업자(CP)는 인터넷제공사업자(ISP)에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항상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토마스 볼머 넷플릭스 글로벌콘텐츠전송디렉터는 “과거엔 해외 ISP에 망 이용대가를 냈을지 몰라도 현재는 어느 ISP에도 내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바꿔 말하면 과거에는 망 이용대가를 낸 적이 있다는 얘기다.
넷플릭스는 언제 어떻게 망 이용대가를 냈고, 지금은 왜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 것일까?
그에 앞서 살펴볼 것이 있다. 망에 접속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트랜짓’(Transit·중계접속)과 ‘피어링’(Peering·직접접속)으로 구분된다. 트랜짓은 중계접속이다. CP 또는 ISP가 전세계 연결을 위해 상위 계위 ISP에 접속하면, 상위 계위 ISP는 전달받은 트래픽을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에게 전송한다. 트랜짓은 접속에 대한 대가를 내야 하며, 다만 여러 ISP를 거치기 때문에 콘텐츠 품질 확보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피어링은 협약을 맺은 두 당사자간에 트래픽을 전송하는 직접접속 방식이다. 말 그대로 직접 접속을 하기 때문에 중계접속을 하는 트랜짓 대비 콘텐츠 품질을 담보할 수 있다. 피어링은 대가를 지불하기도, 지불하지 않기도 한다. 서로 주고받는 트래픽 규모가 비슷하다면 협의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지만(Settlement Free Peering), 한쪽 트래픽이 치솟아 쌍방 트래픽이 불균형해지면 대가를 지불(Paid Peering)하기도 한다.
처음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한 2007년 1월, 넷플릭스는 ‘레벨3’·‘TATA’ 등 다수 인터넷백본사업자(IBP)의 트랜짓 서비스를 이용해 ISP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당연히 IBP에 트랜짓 대가를 지불했다.
하지만 트랜짓으로는 콘텐츠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자, 넷플릭스는 2008년부터 ‘라임라이트’·‘아카마이’ 등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사업자와 계약해 CDN 서비스를 이용했다. CDN은 전세계에 분산돼 있는 서버 네트워크다.
콘텐츠 제공자와 이용자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들 때, 대용량 콘텐츠를 서버 여러 곳에 분산시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때 넷플릭스는 CDN 사업자에 대가를 지불하고, CDN 사업자는 다시 ISP에 피어링 방식으로 접속해 대가를 냈다. 즉, 넷플릭스는 CDN을 통해 ISP에 간접적으로 망에 대한 대가를 낸 셈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트래픽이 급증하며 문제가 발생했다. 넷플릭스와 계약한 IBP 겸 CDN 사업자인 ‘레벨3’가 당시 피어링을 하고 있던 ISP ‘컴캐스트’와 상호접속 분쟁을 일으킨 것이다. 2010년 무렵 레벨3는 당시 컴캐스트와 피어링 상호접속 구간에 트래픽이 급증하자 컴캐스트 측에 망 증설을 요구했지만, 컴캐스트는 일부만 증설한 뒤 추가적인 증설에 대해서는 대가를 요구했다.
레벨3는 그러나 대가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넷플릭스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양측은 2013년경 대가 지불에 합의하면서 문제를 일단락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 일은 넷플릭스로 하여금 OCA(Open Connect Appliance) 개발을 시작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OCA는 CDN 기술이 적용된 일종의 캐시서버다. CDN과 마찬가지로 서버를 분산시켜 콘텐츠 제공자와 이용자간 전송 거리를 줄이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전세계 ISP에 OCA 설치를 요구하고, 이를 통해 트래픽을 크게 절감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부터 넷플릭스는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기로(Settlement Free Peering) 한다. OCA로 트래픽을 크게 줄일 수 있으니, 망 이용대가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
문제는 넷플릭스가 중소 ISP들과는 대가 지불이 없는 피어링을 했지만, 미국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4대 ISP(컴캐스트·TWC·AT&T·버라이즌)와는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넷플릭스는 2013년 2월 최초 오리지널 ‘하우스 오브 카드’ 론칭 당시 가입자가 급증하자 컴캐스트에 대가 지불이 없는 피어링을 요청했으나, 컴캐스트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컴캐스트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CDN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제안했고, 넷플릭스 역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계속된 품질 저하 문제를 겪으면서, 2014년 2월 무렵 결국 컴캐스트와 대가를 지불하는 피어링에 합의하게 된다. 넷플릭스 주장에 따르면 현재는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고 있지만, 대신 2016년 재계약 당시 넷플릭스가 컴캐스트의 케이블TV에 플랫폼인플랫폼(PIP)을 하면서 가입자 연동 방식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넷플릭스는 트랜짓, CDN, 피어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해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자체 CDN인 OCA를 구축한 뒤에는 대가 지불을 않는 피어링을 요구했고, 그럼에도 일부 대형 ISP와는 합의를 이루지 못해 사실상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요약된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자체 CDN인 OCA를 개발하고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중소 ISP에 OCA를 설치한 뒤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는데, 대형 ISP와는 합의를 못 이루자 이들과는 망 이용대가를 지불했다”면서 “넷플릭스가 중소 ISP엔 OCA 사용을 압박하며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으면서, 반대로 대형 ISP엔 갈등 끝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이중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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