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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바란다⑬] 대기업 없는 K-시큐리티…'만년 유망주' 뗄 정책 의지 필요

2025년 현재, 디지털산업은 다시 한번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치·경제·기술 전반에서 혼돈과 격변이 일상화되는 시대,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방향성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절실하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혼돈의 전환기, 산업정책의 나침반을 묻다’를 주제로 창간 특집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새 정부에 바란다’는 대기획 아래, 통신·방송·반도체·AI·보안·게임·유통 등 산업별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하고, 각계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산업계와 정책 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또한 유력 대선주자의 ICT 공약 분석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 아래 산업계가 나아갈 좌표를 함께 고민해 본다.[편집자]

2월 글로벌 IT 전시회 '리프(LEAP) 2025'에서 열린 라킨(Rakeen) 브랜드 공식 출범 발표식. 강석균 안랩 대표(가운데)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버보안 공급사 사이트(SITE) 임원진과 박수를 치고 있다. [ⓒ안랩]
2월 글로벌 IT 전시회 '리프(LEAP) 2025'에서 열린 라킨(Rakeen) 브랜드 공식 출범 발표식. 강석균 안랩 대표(가운데)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버보안 공급사 사이트(SITE) 임원진과 박수를 치고 있다. [ⓒ안랩]

[디지털데일리 김보민기자] 국내 보안업계에는 '만년 유망주'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국가 배후 공격부터 사이버 전쟁까지 보안업계가 성장할 기회요인은 많지만, 경쟁에 뒤처진 국내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 설 자리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해외 진출을 외치더라도, 내수 시장에 의존해 실적을 유지하는 경우도 대다수다. 한국표 보안 대기업이 전무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보안업계가 잡을 수 있는 기회요인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경쟁에 견줄 만한 차기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해외 진출 실패, 저가 경쟁, 인력난 등 고질적인 문제를 타파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 이미 유망주 딱지 뗀 글로벌 기업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전 세계 보안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보안 기업은 팔로알토네트웍스다. 팔로알토네트웍스는 지난해 11조원대 매출을 올렸고 포티넷, 체크포인트소프트웨어테크놀로지스, 지스케일러, 옥타, 데이터독 등 보안 전문기업들 또한 조단위 매출을 기록하며 성장세에 동참하고 있다.

반면 국내 보안기업에서는 매출 1조원 벽을 넘어선 곳이 없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000억원 선을 넘어선 곳은 안랩(2606억원), 윈스(1015억원)로 이외 기업들은 500억원 안팎 매출에 머물러 있다.

주식 시장에서도 격차가 두드러지고 있다. 연초 팔로알토네트웍스(170조원), 크라우드스트라이크홀딩스(120조원), 포티넷(104조원), 데이터독(49조원), 지스케일러(42조원), 체크포인트소프트웨어테크놀로지스(43조원) 등 주요 기업들은 조단위 시가총액을 달성했지만 국내 기업은 1조원 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9일 기준 안랩은 6954억원, 지니언스는 1627억원, 윈스는 1433억원, 라온시큐어는 1075억원대 시총을 기록했다. 매출과 시총 등 규모의 경쟁에 있어 국내 기업이 여전히 영세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보안 기업들은 북미·중동·동남아·일본 등 해외 시장을 필두로 새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덩치 싸움에 밀려 실제 영역별 점유율은 미미한 상황이다. 해외 수출도 역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가 발간한 '2024 국내 정보보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정보보호산업 수출은 전년 대비 16.3% 감소했고, 정보보안 수출액 또한 4.8% 줄었다. 물리보안 또한 17.2% 줄어들며 영역별 감소세가 이어진 모양새다.

해외 시장에서 새 활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자, 내수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가장 최근 공시한 보고서를 기준으로 매출 실적을 살펴보면 90% 안팎으로 내수 사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국내 보안기업 관계자는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 보안 시장에서는 구매자가 힘을 가지고 있다"며 "내수 시장은 좁고 구매 수요는 적은데, 그에 비해 플레이어(공급사)가 많아 저가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로그프레소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현지시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RSA콘퍼런스(이하 RSAC)'에 참가해 클라우드 SIEM 플랫폼 '로그프레소 클라우드'를 소개했다. [ⓒ로그프레소]
로그프레소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현지시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RSA콘퍼런스(이하 RSAC)'에 참가해 클라우드 SIEM 플랫폼 '로그프레소 클라우드'를 소개했다. [ⓒ로그프레소]

◆ 채우고 채워도 부족…판도 뒤집을 '한방' 절실

국내 보안 업계가 더딘 성장세를 보이자, 인력 수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사이버보안 영역으로 좁혀봐도 마찬가지다. KISIA가 지난 2월 발표한 '2024년 사이버보안 인력수급 실태조사(2024년 8월 기준)'에 따르면 보안 업무를 겸업하고 있는 비중은 63.8%로 가장 많았고 보안업무만 전담하는 경우는 28.4% 수준이었다. 외부 인력 비율은 7.8%에 달했다.

국내 보안 업계의 이러한 실적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시스코가 이달 발표한 '2025 사이버보안 준비 지수'를 살펴보면, 한국 응답자 97%는 숙련된 사이버보안 인력 부족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응답자 34%는 10개 이상의 보안 관련 직무가 미충원 상태라고 답했다. 첨단 기술 경쟁이 본격화된 현시점에서, 규모의 경쟁은 물론 인력 경쟁에서도 국내 역량이 뒤처지는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 보안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당시 사이버보안 인재 10만명 양성을 공언하기도 했는데, 화이트해커 교육에만 몰두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보안을 주요 전략산업으로 키우고 있는 만큼, 차기 정부에서는 국내 판도를 뒤집을 만한 새 정책적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첨단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국내 보안 기업이 노릴 만한 사업 영역은 다채로워질 전망이다. AI 기술의 경우 방어자 뿐만 아니라 공격자 또한 악용할 가능성이 있어 아이덴티티부터 엔드포인트, 네트워크, 클라우드,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통합 보안 체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은 자체 기술력과 파트너사 역량을 결합해 통합 보안 체계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그프레소 얼라이언스는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확장형탐지및대응(XDR)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보안기업 관계자는 "한 때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형태로 보안 시장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는데, 차기 정부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정책적 의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SK텔레콤 해킹은 물론 국내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고를 계기로 보안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차기 정부가 이러한 흐름에 가속도를 붙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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