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페이팔 마피아’라는 게 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였다가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를 통해 번 돈으로 지금의 테슬라를 만든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엑시트가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을 이끄는 엔젤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성공 사례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먹튀’로만 본다.”
유효상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교수는 3일 서울역 인근에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주최로 ‘스타트업 엑시트 생태계 전략연구’ 최종 보고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엑시트란 스타트업이 어떤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BM)의 가능성을 선보이는 단계를 거쳐 하나의 기업으로 시장에 안착하는 마지막 단계다. 엑시트 방법은 크게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두 가지다. 유효상 교수는 성공한 스타트업의 삼위일체로 ‘좋은 BM을 갖춘 스타트업’과 ‘재무적·전략적 투자자’ 그리고 ‘엑시트’를 꼽았다.
스타트업 창업가(entrepreneur)는 초창기 엔젤투자자, 이후 벤처캐피탈(VC)의 투자를 받다가 최종적으로는 M&A나 IPO를 통해 엑시트를 하게 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을 약 4조8000억원 규모에 인수를 추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이나 자본에 인수합병되는 사례를 소위 ‘먹튀’처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유효상 교수는 그러나 엑시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궁극적으로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의 25.7%만이 엑시트 했으며, 엔젤투자 단계를 넘어 시리즈A~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 가운데서도 14~16%만이 엑시트에 성공했다. 나머지 기업은 촉망받던 기업이라도 이른바 ‘좀비콘(좀비+유니콘)’이 된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아무리 좋은 BM을 가진 스타트업도 돈이 없으면 망하는 구조”라면서 “투자도 한번이 아닌 여러번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나름 자금 회전이 좋다는 최근 상황에서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건수는 줄고 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엑시트 플랜이 없으면 스타트업 99%가 실패하는 게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엑시트를 ‘패배자’나 ‘먹튀’ 같은 부정적 프레임으로 바라본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시장에서 엔젤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해 많은 스타트업이 지속적인 투자를 받지 못하고 결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순환되지 못한다는 것. “이는 경영자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손해”라는 지적이다.
특히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페이팔이나 페이스북 창업 멤버들이 회사를 엑시트하고 받은 자금으로 새로운 유니콘 기업을 창업한 이른바 ‘엔젤 마피아’ 사례들을 지목하며 “한국에서도 ‘배민 마피아’ ‘카카오 마피아’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기조가 대대적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당부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가 스타트업 지원 정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잘 돼 있는 데도, 스케일업이 가능한 스타트업들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단순 창업 성공률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좋은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기업들과의 협력이나 해외 진출 등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