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6월10일(수)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및 5대 금융지주 회장(KB·신한·하나·우리·농협)들과 'AX시대 해킹·보이스피싱 대응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금융위원회]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을 겨냥한 연쇄 해킹이 금융보안 정책을 다시 시험대에 올렸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격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2011년 4월,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를 계기로 대폭 강화된 국내 금융 보안 정책이 또 다시 재정립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6월 10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5대 금융지주 주요 경영진과 개최한 ‘AX시대 해킹·보이스피싱 대응 간담회’에서 “AI 공격은 AI로 방어한다”는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보안용 AI를 활용한 취약점 점검을 위해 망분리 규제 긴급완화를 추진하는 한편, 금융지주에는 자체 모의해킹과 계열사 전산자원 관리, 신속한 보안패치 강화를 주문했다.
그러나 대책을 논의한 지 넉 달도 지나지 않아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에서 정보유출이 잇따르며 보안 관리의 허점이 드러났다. AI 도구를 활용한 공격 정황이 거론되는 가운데 금융위는 10월 2일 외부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자산·서비스 전반과 인증·접근통제를 긴급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첨단 위협 대응과 기본 보안 강화를 함께 강조했지만 실제 정보유출을 막는 데는 공백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태는 새로운 AI 정책을 추가하는 데 앞서 지난 6월 금융당국과 금융지주가 약속한 대응이 각 계열사와 개별 업무시스템까지 얼마나 이행됐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2011년 4월 12일 오후 발생한 농협 해킹 사태는 전산시스템 파괴가 금융서비스의 광범위한 중단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물론 당시 농협 전산 마비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른 추론이 존재하고 있다. 은행 창구와 자동화기기 거래는 차례로 복구됐지만, 마지막 서비스까지 회복하는 데 18일이 걸렸다. 같은 시기 현대캐피탈에서 발생한 사고는 고객정보 유출이었다.
후속 조치로 금융위원회가 2011년 6월 발표한 IT 보안 강화 종합대책에선 경영진 책임,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외주·접근권한 관리와 복구체계 강화가 추진됐다.
금융 망분리 의무화는 농협·신한은행 등이 피해를 본 2013년 3·20 전산사고 이후 구체화됐다. 그해 7월 나온 종합대책은 전산센터의 물리적 망분리 의무화와 본점·영업점의 단계적 도입을 제시했다.
이번 신한은행 사고에서는 대출모집인이 이용하는 서비스 등을 통해 약 2만5000명의 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과 연락처 외에 소득·대출한도 등 금융정보가 포함됐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금융거래와 연결되는 구체적인 정보는 금융회사를 사칭하는 사기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악용될 수 있다. 예가람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에서도 유출 피해가 확인됐다.
다만 실현된 운영 피해는 2011년 농협 사태와 구별된다. 당시 농협 사태는 전산마비로 이어졌지만 이번엔 개인정보 유출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금융사가 서비스를 다시 열고 취약점을 고쳐도 이미 유출된 개인정보를 회수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고객의 사기 피해, 인증정보 오용, 추가 유출이 발생했는지 까지도 금융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가 금융 보안 정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AI가 공격에 본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로그와 공격자 IP 분석에서 AI 도구인 아르텍스(ARTEX) 활용 흔적을 확인됐다.
특정 도구가 사용됐다는 사실만으로 AI가 새로운 취약점을 발견했는지, 기존 해킹 자동화보다 얼마나 빠르게 공격했는지까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금융사가 금융 보안의 중점에 놨던 계정계 등 핵심 시스템에서 이제 다양한 방식으로 연계된 이른바 비핵심 시스템에 대한 보안이 대책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국가사이버보안센터(NCSC)는 2025년 평가에서 AI가 기존 공격기법의 효율을 높이고, 알려진 취약점을 보완하기 전에 악용할 기회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안 업계에선 "관건은 공격에 악용될 수 있는 약점을 금융회사가 얼마나 빨리 없앨 수 있느냐가 중요해 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흐름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는 역량 있는 금융회사의 방어용 AI 활용과 취약한 외부 접점의 통제를 함께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감독당국이 규제 예외에 붙은 보안조건의 이행을 더 엄격하게 확인하거나 미흡한 시스템의 연결을 제한할 수는 있다.
또, 금융회사에는 자산별 관리 책임자, 허용된 조회 범위, 취약점 인지부터 수정까지 걸린 시간, 수정 후 재검증 결과를 설명하라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
다만 방어 자동화에도 금융업의 제약이 있다. 의심스러운 접속을 즉시 차단하는 것과 결제·이체를 처리하는 핵심 시스템을 중단시키는 것은 영향이 다르다. AI의 판단을 모두 자동 집행했다가 정상 거래를 막는다면 방어 과정에서 운영 피해를 만들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분명한 중대한 정보보호 사고이자 금융권 관리체계를 점검할 경고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2011년 농협과 같은 금융 기능의 위기가 이미 재현됐다고 볼 단계는 아니다. 앞으로 정책 변화의 깊이는 최종 침해 범위, 공통 원인, 재발 여부와 금융회사의 조치 속도가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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