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이미지.
[디지털데일리 김남규기자] 집을 사기로 계약했다가 마음이 바뀌면 계약금만 포기하고 계약을 깰 수 있을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중도금을 내는 등 계약을 실제로 이행하기 시작했다면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두 배로 돌려주는 것만으로는 계약을 해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4일 부동산 투자·컨설팅 전문기업 밸류업이노베이션에 따르면 민법 제565조는 특별한 약정이 없다면 당사자 한쪽이 계약을 이행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계약금을 기준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수인이 계약을 해제하려면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포기하면 된다. 반대로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하려면 받은 계약금의 두 배를 돌려줘야 한다. 흔히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금을 포기하면 계약을 깰 수 있다”거나 “계약금의 두 배를 돌려주면 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시점에는 제한이 있다. 상대방이 계약을 실제로 이행하기 시작하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법에서는 이를 ‘이행의 착수’라고 한다.
대법원은 이행의 착수를 외부에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계약상 의무의 일부를 실제로 이행하거나, 이를 위해 필요한 행동을 시작한 경우로 보고 있다. 단순히 돈을 마련하는 등 준비만 한 상태는 부족하지만 계약상 의무를 모두 이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 매매에서는 중도금 지급이 대표적인 기준이다. 배준형 밸류업이노베이션 대표는 “실무적으로 가장 흔한 기준은 중도금 지급”이라며 “중도금이 없는 계약이라면 잔금 지급이 그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중도금을 전부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은 중도금 일부만 계좌로 입금한 경우에도 이행을 시작한 것으로 인정한 바 있다. 중도금 전액이 아니라 일부만 지급했더라도 이후에는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두 배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계약을 해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약속한 날짜보다 중도금을 먼저 지급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계약서에 중도금 지급일이 적혀 있어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그 날짜보다 먼저 중도금을 보내는 것 역시 이행의 착수로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수인이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중도금 지급일보다 하루 먼저 돈을 보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매도인이 뒤늦게 마음을 바꿔 계약금의 두 배를 돌려주겠다고 해도 계약을 해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배준형 밸류업이노베이션 대표.
배 대표는 “중도금을 완납하지 않고 일부만 넣어도, 정해진 날짜보다 하루라도 먼저 넣어도 원칙적으로 이행의 착수로 인정된다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외도 있다. 매도인이 먼저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일정 기한까지 계약금의 배액을 받아가도록 요구한 뒤, 이를 받지 않으면 공탁하겠다고 통지한 경우 등이다.
이런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중도금 지급일이 매도인에게도 지켜져야 할 기한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 경우 매수인이 지급일보다 먼저 중도금을 보냈다고 해서 매도인의 계약 해제권이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식 계약금이 아닌 ‘가계약금’만 주고받았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다만 돈의 이름이 가계약금이라고 해서 무조건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배 대표는 “가계약금 단계에서는 원칙적으로 배액배상 없이 계약을 정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계약일, 잔금일, 계약금액, 잔금 지급 시기 등 중요한 내용을 문자나 전화로 미리 협의했다면 정식 계약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어 계약의 실질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금의 일부만 먼저 지급한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이때 계약 해제에 필요한 금액은 실제 주고받은 돈이 아니라 당초 약속한 계약금 전체를 기준으로 판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계약금을 1억원으로 정하고 매수인이 1000만원만 먼저 지급했다고 가정해보자. 매도인이 실제 받은 1000만원의 두 배인 2000만원만 돌려준다고 해서 계약이 해제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대법원은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에도 배액배상의 기준은 당초 약정한 계약금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결국 부동산 계약에서 “계약금만 포기하면 언제든 계약을 깰 수 있다”는 생각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상대방이 중도금을 지급하는 등 이미 계약 이행을 시작했는지가 계약 해제 가능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배 대표는 “‘계약금만 포기하면 된다’는 말은 이행의 착수 전까지만 유효한 반쪽짜리 진실”이라며 “매매계약 체결 직후부터 상대방이 중도금을 얼마나 빨리 준비할 수 있는지, 계약서에 이행 착수 관련 특약이 있는지를 함께 점검해야 예상치 못한 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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