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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사 잡으랬더니…이통사에 기대야 사는 ‘알뜰폰’의 역설

이통사 망 빌려 자회사와 경쟁…독립 성장 가로막는 구조적 한계 지적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알뜰폰 시장의 구조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동통신사의 대항마를 키운다는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여전히 통신사의 인프라에 의존하면서, 정작 시장에서는 통신사 자회사와 경쟁해야 하는 기형적 구조가 굳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의 구조로는 알뜰폰의 독립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정작 정부 정책은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듯 영세 사업자의 생존을 지원하는 데 머물렀다는 평가다. 인프라 사업엔 통상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재 알뜰폰 시장은 여전히 영세 사업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다.

알뜰폰이 이동통신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정의하고, 사업자의 성장과 퇴출까지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 ‘메기’ 키우랬더니 ‘베스’ 됐다…이통 자회사 점유율 50%

2일 이주희 의원실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알뜰폰 2.0,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토론회에선 이 같은 알뜰폰 시장의 구조적 한계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알뜰폰은 저렴한 요금제를 앞세워 이동통신사와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적 시장이다.

통신사로부터 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상 독립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는 태생적인 한계가 따라왔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면 핵심 원가인 도매대가를 낮춰야 하는데, 이 역시 망을 보유한 통신사와의 협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세미나에선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통신사 자회사의 시장 진입 이후 더 뚜렷해졌다고 지적됐다. 시장 초기 정부가 통신사 자회사의 알뜰폰 진입을 허용하면서, 당초 이동통신사와 경쟁해야 하는 시장이 오히려 통신사 계열사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것이다. 현재 통신3사 계열 알뜰폰 사업자의 점유율은 약 50%에 달한다.

방효창 경실련 정책위원장은 “경쟁사가 원가를 정하는 자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라며 “원가의 기반은 대부분 도매대가인데 이 도매대가는 모회사가 정한다. 동시에 그런 시장에서 자회사와 독립계 알뜰폰 사업자가 경쟁하는 아주 기형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도 이통사 계열사를 생태계의 외래어종에 빗대면서 “이통사 계열사가 알뜰폰 시장에서 좋은 역할을 하는 ‘메기’가 아니라, 생태계를 잡아먹는 ‘베스’ 같은 존재가 된 상황”이라며 “베스 같은 종을 같은 생태계에 두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자본력의 차이는 실제 가입자 유치 경쟁에서도 나타난다는 게 독립계 사업자들의 주장이다. 이통사 계열사가 현금성 혜택과 사은품을 앞세워 가입자를 끌어오는 동안 적자에 시달리는 독립계 사업자는 같은 수준의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업계 대표로 참석한 박장희 큰사람커넥트 전무는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실제 가입도 많은 요금제를 기준으로 보면 이동통신 3사가 알뜰폰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도매대가가 3만4000원인데 이 원가가 약 7년 동안 내려가지 않았다”며 “일부 이동통신 자회사는 이 요금제를 3만5700원에 판매하면서 7개월 동안 매월 네이버페이 3만6000원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고객이 7개월 동안 0원에 이용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중소 알뜰폰 사업자가 가입자 한 명을 모집하는 데 투입하는 비용은 약 4만원 수준인데 이동통신 자회사는 약 11만3000원 수준”이라며 “가입자 한 명을 유치하는 데 투입할 수 있는 비용에서 약 8만원 가까운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시장의 불균형을 막아달라는 것이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의 요구”라고 덧붙였다.

◆ 규제 피해간 ‘현금성 혜택’…공정경쟁 흔들

2일 오전 이주희 의원실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알뜰폰 2.0,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토론회에선 알뜰폰 시장의 구조적 한계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사진=디지털데일리]

이통사 계열사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등록조건에는 모기업의 유통망을 이용한 영업·마케팅 보조 금지, 도매제공 ‘몰아주기’ 금지, 계열사 합산 점유율 50% 제한 등이 담겨 있다. 2020년에는 결합상품 동등제공과 도매대가 이하 요금제 출시 제한 등의 조건도 추가됐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규제가 실제 경쟁 조건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당장 표시 요금 자체는 도매대가 이상으로 유지하더라도 포인트·상품권·캐시백 등을 별도로 제공하면 소비자의 실질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어서다.

김도형 프리텔레콤 전무는 “등록조건은 ‘도매대가 이하 상품 출시’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돼 있지만 현금성 혜택을 실제 판매가격에 합산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며 “이런 공백을 이용해 규제를 우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등록조건의 문구를 지켰는지가 아니라 그 취지가 지켜졌는지를 판단할 기준이 필요하다”며 “대기업 계열 알뜰폰의 현금성 혜택 제공 현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혜택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쿠폰이나 포인트, 상품권 같은 혜택을 없애는 것이 곧 공정한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혜택의 재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혜택이 정말 공정한 시장 경쟁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불공정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영세사업자에 계속 수혈할 건가…‘보호’에서 ‘자생’으로

이날 일각에선 이통사 계열사를 견제하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재와 같은 영세 사업자 중심의 산업구조가 지속 가능한지 역시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통신은 지속적인 투자를 요구하는 산업이고, 그만큼 자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과거 정부가 이통사 계열사의 알뜰폰 시장 진입을 허용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알뜰폰 2.0’ 활성화 방안이 ‘자생력’에 방점을 찍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매대가 인하와 전파사용료 감면으로 사업 여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체 설비를 갖춘 서비스형·독립형 MVNO가 시장에 등장할 수 있도록 제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조대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알뜰폰 정책은 규제의 전환과 독립 사업자의 경쟁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며 “독립 알뜰폰 사업자에게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영국 스카이모바일은 전자의 사례로 제시하면서 “영국 사례를 보면 스카이모바일은 약 4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대형 MVNO”라며 “상당한 가입자 기반을 갖추면서 도매대가 협상력도 높아졌고 실제로 영국 MNO들을 상대로 도매 조건을 제안받아 협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입자 규모 자체도 경쟁 자산이지만 그 규모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도매 협상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MNO에 실질적인 경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업자와 틈새시장을 찾아가는 중소형 사업자가 함께 공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싼 요금’이 전부 아니다…알뜰폰 역할 재설정

정책적으로 이통사와 알뜰폰의 역할을 분리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는 제언도 이뤄졌다. 현 시장 구조에서 저가 요금 출시를 위해 이통사와 알뜰폰을 경쟁시키는 것은 모순적이지만, 당장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알뜰폰 정책도 단순한 요금 인하 수단을 넘어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출구전략을 포함한 전면적인 정책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권오상 디지털미래연구소 대표는 “해외에서 잘되는 MVNO를 보면 MNO나 정부가 만들어준 ‘싼 요금 시장’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며 “사업자 스스로 시장을 세분화하고 개척해 자기 시장을 만든다. 예를 들어 직업군별로 시장을 나누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정부가 만들어준 시장 안에서 여러 MVNO가 요금 경쟁을 하지만, 해외 사업자들은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그에 맞는 상품을 판매한다”며 “그렇게 자기 시장을 만들면 반드시 요금이 더 쌀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날 알뜰폰 정책의 무게중심을 단순 지원에서 사업자의 자체 경쟁력 강화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송규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 과장은 “규제나 지원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업자들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해외에서는 일정 부분 설비를 갖춘 풀 MVNO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를 참고해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혔다.

이통사 계열사에 대한 현금성 혜택 규제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송 과장은 “경쟁사업자 입장에선 부담스럽고 제한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용자들은 기존에 받던 혜택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며 “소비자 혜택이 감소하거나 전체적인 가격 경쟁이 줄어들 가능성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통사로부터 자회사 알뜰폰이 부당한 지원을 받는다면 현행법 위반으로, 당연히 공정하게 규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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