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대 은행 사옥 전경 [사진=각 사 제공]
내년 4월부터 은행원들은 일은 지금보다 덜하면서 임금은 더 받을 것 같다. 출근 시간은 줄이고 월급은 올리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노동시간 단축 취지를 고려한 조치라고 한다. 장사가 안 돼 고금리 부담에 허덕이는 소상공인이나 개인사업자,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조치인지 자문해 봤으면 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9월 28일 산별 교섭을 통해 내년 4월부터 은행 영업점이 문 여는 시간을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30분 늦추기로 잠정 합의했다. 개점 시간은 늦어지지만 문을 닫는 폐점 시간은 오후 4시로 지금과 같다.
금융권 노사는 영업 시간 단축과 함께 임금 3% 인상안을 포함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한다. 은행들은 영업점 문을 여는 시간이 9시 30분으로 늦춰져도 출근은 그 이전에 하고, 퇴근도 오후 4시가 넘어야 가능하다면서 영업 시간 단축에 따른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려는 모양새다.
영업 준비를 하고 퇴근을 위해 서류 정리 등을 하는 것은 은행 뿐 만이 아니다. 글로벌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기업들의 업무 강도는 은행에 비해 훨씬 셀 것이다.
비대면 즉 온라인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디지털 금융 시대에 은행 문을 늦게 연다고 해서 무슨 불편함이 있겠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전문 은행을 이용하면 은행 창구에 가지 않고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금융에 취약한 노년층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국내 주요 은행들의 창구에 가보면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들이 부지기수다. 30분에서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건 흔한 일이다. 노년층은 휴대폰 등을 이용해 디지털 금융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미숙할 뿐만 아니라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고 불안감을 갖기도 한다. 금융회사 직원과 직접 접촉해 거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금융산업 노사 간 잠정 합의안 내용이 보도되자 온라인에서는 직장인들의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은행은 연차를 내야 갈 수 있는 귀한 곳"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은행은 고객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노사 잠정 합의안에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주 1시간 이내, 하루 최대 30분 이내에서 출근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자율 출근제를 신설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뿐이 아니다. 노사는 지난해 도입한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에는 금요일 오후 3시30분부터는 신규 고객의 업무 접수를 중단할 수 있는 '라스트콜(Last Call·고객마감)' 제도까지 신설하기로 했다. 월급은 3%를 올려주면서 늦게 출근하고 빨리 퇴근하는 방법 찾기에 골몰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고 다양한 복지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로 시간 단축은 근로자 휴식이나 가족 돌봄 등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반면 생산성 향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하면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제 전반에 다양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하는 시간은 줄이되 월급은 그대로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업종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실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만 조직 문화와 업무 체계 개선, 전문가 교육 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디지털 금융이 발전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편의성이 향상되고 있지만, 금융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과제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할 일이 많다. 특히 고령자 고객에게는 투자 상품의 위험을 쉽게 설명해 줘야 한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 1850만원이다. 올해 상반기 NH농협을 제외한 4대 시중은행의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715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6% 올랐다. 하반기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연봉은 1억 4000만원을 웃돌게 된다. 고액 연봉자들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경제 성장 전망치가 3%대로 속속 상향 조정되고 있지만 다른 산업으로 온기가 퍼지는 낙수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고용없는 성장이 이어지면서 청년층의 취업난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청년층 등은 고금리로 인한 대출 이자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기업 5곳 중 1곳은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다. 한국은행은 금리가 0.25%포인트 상승할 경우 가계는 3조3000억원, 기업은 3조000억원의 이자를 더 부담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은은 지난 7월에 이어 8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연 3.00%로 끌어올렸다.
은행들은 고금리와 예대마진 확대로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은행 이자이익은 32조 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3%(2조5000억원) 증가했다. 이에 비해 자산관리(WM)와 신탁, 퇴직연금 등 비이자사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은 2조9000억원으로 43.4%(2조3000억원)나 감소했다.
은행들은 이자이익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대출 이자로 돈을 버는 전통적인 영업 방식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은행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자 장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난 여론을 잠재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세계 100대 은행 순위를 보면 KB국민은행은 60위, 신한은행 63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81위, 84위다. 같은 해 스위스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은 28위였다. 올해 평가에서는 평가 대상 70개국 중 21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은행법 시행규칙에 의해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업했으나 2016년 규제를 완화해 유연하게 영업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조치로 오후 6시 또는 7시까지 영업 시간을 확대하는 은행 점포들도 있다. 토요일에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직원이 상주하면서 계좌 개설이나 자산 운용 상담을 하는 등 '저녁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직장인과 학생 등 젊은 층의 퇴근길 또는 방과 후 계좌 개설을 겨냥한 조치라는 설명도 있다. 오래 갈 미래 고객을 겨냥한 영업인 셈이다.
금융은 대표적인 서비스 업종의 하나다.
은행은 단순히 금융 상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뢰를 파는 곳이라고도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고객의 니즈(Needs)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은행 직원들의 편의도 좋지만 소비자 중심의 금융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 고객의 금융 생활을 돕기 위해 외국인이나 고령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영업(대면 채널)을 강화할 수도 있다.
정부는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했을 때 부실 금융기관 구조조정과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은행권 44조 2291억원을 포함해 금융권에 97조 2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정부는 2002년 9월에는 25년 이내 상환을 목표로 공적자금 장기 상환계획을 세웠고 2003년부터 공적자금상환기금을 중심으로 부채를 꾸준히 갚아 왔다. 현재 남아있는 부채 7조9226억원을 2027년 예산안에 반영했다. 계획대로라면 상환을 시작한 지 24년만에 정부 부담분 상환이 마무리된다.
은행들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들의 혈세로 마련된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살아날 수 있었다. 고마움을 느끼고 금융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 등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오승호 디지털데일리 주필
서울신문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아리랑국제방송 시사보도센터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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