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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호 칼럼] 78년 만에 실시하는 농지 전수조사가 투기꾼 잡기 위한 것인가

농지 전수조사는 필요하지만 목적은 농지정책을 시대에 맞게 바꾸기 위한 것이어야

AI로 생성한 이미지

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을 찾는 도시민들과 노부모 사이에선 농지 전수조사가 입에 오르내릴 것 같다. 정치권은 추석 민심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요즘 분위기로 미루어 보면 추석 명절 이후에는 농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와 여권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이영수 농림축산비서관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민주당 공식 유튜브 '민주당 TV' 등에 출연, 농지 전수조사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농심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언급한 이후 농식품부와 지방정부는 지난 5월 18일부터 7월 말까지 전체 조사 대상 면적의 97%인 132만ha(1013필지)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그 결과 농지 소유 제한을 위반하거나 불법 임대차, 불법 전용, 무단 휴경 등이 의심되는 농지의 비율은 27%(30만ha, 284만필지)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불법 임대차가 의심되는 농지 비중이 21.1%로 가장 많고, 무단 휴경(11.6%), 불법 전용 의심(9%) 등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농지 195만ha 가운데 1996년 1월 1일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가 조사 대상이다.

정부는 기본조사를 토대로 8월부터 의심 농지를 대상으로 현장 확인 중심의 심층 조사와 보완 조사를 하고 있다.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조사 대상의 4분의 1 이상이 마치 법을 위반한 범죄 혐의자라도 되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농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기본조사에는 전국에서 공무원 5313명과 민간 조사원 2964명 등 8277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심층 및 보완 조사에서는 철저한 교육을 통해 고령 농민들이 불안 심리를 갖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쓰기 바란다.

농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 가운데 불법 임대차와 관련된 것은 농촌 현실과 동떨어진, 형식적인 수치가 많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농촌에 가보면 알겠지만 농사를 짓던 부모가 고령화되면서 육체적으로 농사일을 하기 힘들게 되면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농지를 위탁하곤 한다.

이 때 법에 의해 서면으로 임대차계약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구두로 하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 가령 과수원이라고 하면 "나 대신 과수원을 경영하고 수확하면 먹을 분량 정도만 달라"고 하는 식이다. 자식들이 있어도 오랜 기간 도시 생활을 하다보면 은퇴 이후에도 부모의 농사일을 이어받기 쉽지 않다.

농지를 상속받아도 규정을 잘 몰라서 휴경지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상속받은 농지가 3000평 정도인 1ha를 넘게 되면 초과분은 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에 위탁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농지법 위반이 된다. 상속받은 농지가 1ha 미만이면 친구나 지인 등에게 위탁해도 된다는 법 조항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농업의 지속 가능성이다. 농업은 식량 생산을 넘어 환경 보전을 떠받치는 중요한 산업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농촌 인구의 고령화 문제는 도시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농가 인구는 2025년 기준 198만 2000명이다. 2010년까지만해도 농가 인구는 300만명대였는데 15년 사이 100만명 이상 줄어들었다.

65세 이상 농가 인구 비중도 56%나 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 21.2%의 2배를 훨씬 웃돈다. 농촌 고령화는 심각하다.

시골 어르신들의 말을 들어 보면 농지는 팔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농사 지을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과수원에 농약을 치는데 일당 30만원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구하기 힘든게 농촌의 현실이다. 농촌에 청년들은 없다시피하고 외국인이 아니면 일손을 찾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농지 전수조사는 누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 보다는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즉 농업 경영에 무게를 두고 농업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시대 변화에 맞다고 본다.

고령 농업인인지, 아니면 임대차계약에 의한 것인지, 농업법인인지 등 농업 경영의 주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농지 전수조사는 농지에서 어떤 식량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농지 전수조사가 고령 농민들을 범법자로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 탐문조사 등을 통해 수도권이나 행정수도, 관광지 또는 공공기관 이전 지역 등 투기 수요가 예상되는 곳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투기를 가려내 엄정 조치하면 된다.

전수조사는 행정정보나 항공위성 사진, 현장 방문 등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심층 조사에서 조사 인력들은 "왜 농사를 짓지 않고 있느냐", "휴경지가 된 것은 몇 년이나 됐나", "농지를 빌려주고 소작료로 얼마나 받느냐"는 식으로 물어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전수조사 목적이 농지가 실제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처분 명령과 이행강제금이라는 행정 조치가 있기에 농지를 소유한 고령의 농민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쌓일 여지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투기와 관련되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 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농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 당연한 절차인데 그러지 못했다.

농지 전수조사가 부동산 관련 세제 개편처럼 정책 신뢰를 떨어뜨리게 해서는 안 된다.

식량 안보와 환경 보호, 기후 변화 등으로 농업의 중요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강조되고 있다. 전수조사의 목적은 농지 정책을 시대 변화에 맞게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 농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본다.

오승호 디지털데일리 주필

서울신문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아리랑국제방송 시사보도센터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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