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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1등 의미없다”는 KB·신한금융의 속사정

KB국민은행(왼쪽)과 신한은행 사옥 전경 [사진= 각 사 제공]

[디지털데일리 이호연기자] 요즘 국내 금융지주 수장들의 입에서 ‘1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KB금융지주의 차기 수장으로 내정된 이재근 부문장은 최종 후보 확정 발표 후 첫 출근길인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국내에서 1등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금융산업의 새로운 표준과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금융과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신한금융지주의 진옥동 회장도 비슷한 메시지를 내놨다. 진 회장은 지난 7월 창립 44주년을 맞아 공개한 다큐멘터리에서 “재무적으로 1등을 한다고 해서 100년, 200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순이익이나 매출 등 단순 수치상 1등으로는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작금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양사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이 내정자의 메시지는 KB금융이 이미 실적과 시가총액, 주주환원 등 여러 지표에서 선두에 올라선 만큼 국내 금융지주 간 순위 경쟁을 넘어 글로벌 리딩금융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미다. 그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를 잇달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등을 지키는 것보다 지금의 우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를 새 과제로 내세운 것이다.

신한금융은 결이 조금 다르다. 한때 ‘리딩금융’을 놓고 KB금융과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최근에는 순이익과 기업가치 측면에서 KB에 밀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 회장이 재무적 1등보다 고객 신뢰를 강조한 것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 ‘신포도’처럼 들릴 수도 있다. 실제 금융회사에 이익과 자본력, 기업가치가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양 수장의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금융산업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경쟁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어서다. 과거에는 은행 점포 수와 자산 규모, 예대마진이 경쟁력을 가늠하는 주요 잣대였다면 이제는 AI 전환 속도와 플랫폼 경쟁력, 비은행 포트폴리오, 글로벌 사업과 자본시장 역량이 금융그룹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순이익이나 자산 규모만으로 금융그룹의 장기 경쟁력을 판단하기 어려워진 배경이다.

특히 AX(AI 전환)는 기존의 ‘1등 공식’을 흔들 핵심 변수다. AI가 상담과 심사, 자산관리, 내부 업무 전반으로 확산할수록 은행과 증권, 보험을 가르는 전통적 경계는 옅어지고 빅테크 등 이종업계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고객도 계열사 간판이나 자산 규모보다 접근성이 높고 정교하면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다. 이 경쟁에서 앞서는 금융그룹이 향후 시장을 선도하는 주체로 올라서는 것이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두 회사가 지향하는 바는 맞닿아 있다. KB는 이미 1등을 경험한 만큼 순위 그 자체를 넘어선 다음 단계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신한은 애초에 1등 경쟁만으로 금융회사의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양사 모두 말로만 ‘1등’의 의미를 낮출 수는 없다. KB는 현재의 선두 지위를 AI와 자본시장 경쟁력 등 새로운 성장축으로 연결해야 하고, 신한은 고객 신뢰라는 다소 추상적인 가치를 실적과 기업가치로 증명해야 한다.

관건은 기존 1등을 부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1등을 넘어 어떤 새로운 경쟁력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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