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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1개 매장이 취향별로 빼곡…도쿄서 만난 ‘중고거래 성지’

세분화된日오프라인 중고거래 시장…韓은 새로운 경험·가치 더해야

지난 9월5일 도쿄 이케부쿠로 거리. 신호등 건너 케이북스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장주영 기자]

[디지털데일리 장주영 기자] “어, 여기도 케이북스네?”

지난 5일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거리를 걷다 몇 번이나 같은 생각을 했다. 분명 조금 전 지나친 간판인데 몇 걸음 옮기면 또 ‘케이북스(K-BOOKS)’가 나타났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다. 이케부쿠로에만 무려 21개의 케이북스 매장이 있다.

겉으로는 다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한 매장에서 여러 장르의 중고품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과 애니메이션, 성우, 캐릭터 등 국적과 팬덤, 종류에 따라 점포를 따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서 열 손가락을 넘어가는 점포를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오프라인 리커머스 매장이 빈티지 의류나 K팝 아이돌의 굿즈 등 일부 상품군에 집중돼 있다면 케이북스는 더 잘게 취향을 나눴다. 취향별로 세분화된 오프라인 매장이 모여 하나의 ‘팬덤 리커머스 생태계’를 만드는 셈이다.

케이북스 캐릭터관 스퀘어 내부 모습. 방문객들이 매대를 살피고 있다. [사진=장주영 기자]

매장별로 나뉘는 상품군과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케이북스를 직접 방문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모여있는 ‘캐릭터관 스퀘어’다.

캐릭터관 스퀘어에 들어서자 벽면을 따라 수십 종의 캐릭터 굿즈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같은 캐릭터가 그려진 배지와 아크릴 키링·스탠드만 여러 종류였다. 지금은 일반 매장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고전 만화·작품의 굿즈나 인형, 각종 팬 굿즈까지 진열됐다.

매장 안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가방과 키링, 액세서리 등에 한껏 드러낸 팬들이 진열대를 천천히 훑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방에 같은 캐릭터의 배지와 인형을 여러 개 달거나 관련 소품으로 꾸민 채 매대를 오가며 원하는 굿즈를 찾았다.

가격대도 110엔(약 1000원) 부터 5000엔(약 5만원)까지 다양했다. 일부 희귀 상품의 경우 수십만원을 호가하기도 했으며 인기 캐릭터는 같은 계열 상품이라도 가격 단위가 다르게 나타났다.

다양한 상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어, 특정 제품을 사려는 목적이 없어도 진열대를 따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검색어를 입력해 중고 상품을 찾는 데 익숙한 국내 소비자에게는 중고거래의 검색창을 그대로 오프라인 거리에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쪽에서는 직원들이 새로 입고된 상품과 고객이 현장에서 매각한 중고 물품을 분류하고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캐릭터 별로 상품을 나누고, 다시 배지나 아크릴 키링 등 종류별로 상품을 나눠 포장하는 형식이었다. 입고품을 정리하느라 손님이 잠시 대기해야 할 정도로 제품 종류와 가짓수가 많았다.

케이북스에서는 소비자의 상품도 매입한다. 일본인 뿐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신분증 확인 등 절차를 거쳐 보유 상품을 매장에서 매각할 수 있다. 팬들이 내놓은 굿즈가 매장에 들어와 다시 상품으로 정리되고, 이를 찾는 또 다른 팬의 손으로 넘어가는 리커머스의 과정이 매장 안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판매자가 됐다가 다시 구매자가 될 수 있고, 매장은 소비자로부터 상품을 사들이는 구매자이자 이를 재판매하는 판매자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플랫폼을 통해 직접 거래하는 개인 간 거래(C2C)가 일반적인 국내 시장과 비교하면 소비자와 사업자 간 C2B와 B2C가 맞물린 형태다.

케이북스에서는 지금은 구하기 힘든 고전 만화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장주영 기자]

이는 케이북스의 중고거래가 단순히 ‘쓰던 물건을 싸게 사고파는 시장’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팬덤이 세분화될수록 취향에 맞는 상품을 모아놓는 전문 매장이 생기고, 소비자가 내놓은 물건은 다시 그 상품을 원하는 다른 팬에게 넘어간다.

아직 오프라인 중고거래가 일부 품목과 전문 상권에 머물러 있는 국내와 달리, 일본에서는 소비자의 취향을 세분화한 전문 매장이 중고품의 매입과 판매를 동시에 맡는 유통 구조가 자리잡은 모습이다.

일본 환경성의 2024년도 중고품 시장 규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시장에서 온라인 C2C 거래 비율은 42.5%, 오프라인 B2C 매장 판매의 비율은 36.6%, 온라인 B2C 판매 비율은 19.3%로 나타났다. B2C 중고거래의 경우 오프라인이 65.5%, 온라인이 34.5%로 집계 돼 오프라인 시장이 여전히 견고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오프라인 중고거래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과 한국이 서로 다른 성장 경로를 거쳤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국내에서는 일반 소비자가 참여하는 오프라인 중고거래 문화가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 온라인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개인 간 거래의 중심도 온라인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케이북스 캐릭터관 스퀘어 외부 전경 [사진=케이북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 오프라인 중고시장은 일반 소비자들이 좋아할만한 상품 거래보다는 사업자가 재고나 중고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형태로 시장이 형성된 측면이 크다”며 “이를 보완하면서 일반 소비자들이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채널로 온라인 중고거래가 먼저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젊은 소비자가 ‘경험’과 ‘체험’을 중시하는 만큼 국내 오프라인 리커머스도 단순히 중고품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젊은 세대가 경험하거나 체험할 수 있고, 아날로그 감성이나 과거의 생활상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꾸준히 관심을 끌 여지가 있다”며 “중고품이 가진 서사나 경험적인 차별점을 보여주는 것이 중고시장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고품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환경적·가치적 의미와 구매 효율성뿐 아니라 상품이 가진 서사성과 경험·체험 요소를 차별화 포인트로 가져가는 것이 국내 시장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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