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3일 시몬스 갤러리 성수에서 열린 이머시브 아트 퍼포먼스 ‘영감이 피어나기 전의 숨결’에서 무용수들이 공연하고 있다. [사진=장주영 기자]
[디지털데일리 장주영 기자] 침대를 보여주지 않고도 ‘잠’을 팔 수 있을까.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시몬스 갤러리 성수’. 침대 브랜드가 마련한 행사지만 정작 매트리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입장권으로 건네진 것은 길게 휘어진 은색 숟가락.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속 녹아내리는 시계를 연상시키는 오브제를 손에 쥐는 순간부터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체험이 시작됐다.
시몬스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6’을 맞아 오는 5일까지 이머시브 아트 퍼포먼스 ‘영감이 피어나기 전의 숨결’을 진행한다. 현대무용과 음악, 미디어아트, 미식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해 관객이 ‘잠들고, 꿈꾸고, 다시 깨어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제품의 기능이나 소재를 설명하는 대신 시몬스가 오랫동안 다뤄온 ‘잠’이라는 브랜드의 영역을 하나의 예술적 경험으로 확장한 것이다.
실제 침대 브랜드가 만든 행사인데도 정작 침대는 행사장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제품의 기능이나 소재를 설명하는 대신 시몬스가 오랫동안 다뤄온 ‘잠’이라는 주제 자체를 하나의 예술적 경험으로 옮겼다.
정해진 객석도, 무대와 관객 사이의 경계도 없었다. 공연자들은 관객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고, 관객 역시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을 이동하며 장면 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9월3일 시몬스 갤러리 성수에서 열린 이머시브 아트 퍼포먼스 ‘영감이 피어나기 전의 숨결’에서 무용수들이 공연하고 있다. [사진=장주영 기자]
본격적인 퍼포먼스는 ‘숨결’을 따라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으로 시작됐다. 공연자들이 끊임없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호흡하는 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진다.
공간 곳곳에서는 고요·유연·회복탄력·구조를 표현한 움직임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서로 떨어져 움직이던 무용수들의 몸짓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호흡처럼 연결됐다.
네 가지 키워드는 시몬스 최상위 컬렉션 ‘뷰티레스트 블랙’을 구성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다만 공연에서는 이를 매트리스의 기능이나 기술로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움직임이 반복되고 연결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만드는 방식으로 수면 중 이어지는 호흡과 신체의 움직임을 시각화했다.
음악도 관객을 꿈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됐다. 이번 프로젝트의 음악감독은 아티스트 그레이(GRAY)가 맡았다. 공간과 움직임을 잇는 메인 테마곡 등을 직접 작곡해 관객이 현실에서 꿈으로, 다시 현실로 이동하는 흐름을 소리로 연결했다.

태이스팅 인스퍼래이션 세션이 펼쳐지는 테이블 위,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시키는 꽃과 오브제가 장식돼 있다. [사진=장주영 기자]
◆ 이머시브 퍼포먼스 이어 오감이 뒤섞이는 미식 경험
공연의 절정은 무용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3층으로 이동하자 이번에는 테이블과 음식이 무대가 됐다.
이곳은 태이스팅 인스퍼래이션 세션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4종의 파인다이닝 아뮤즈 부쉬가 차례로 등장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노마’ 출신 변종인 셰프가 특별 메뉴를 구성하고, ‘아시아 베스트 바’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제스트가 칵테일 페어링을 맡았다.
앞서 입구에서 받은 달리 작품을 연상시키는 스푼도 이때 다시 한번 등장한다. 길게 굴곡진 숟가락으로 크런치 아래 산초와 성게알을 버무린 크림을 떠먹는 형식이다.
시몬스는 달리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이번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시간과 잠, 꿈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탁자 위에는 입장권인 은색 숟가락과 같이 휘어지고 굴곡진 꽃들이 세팅돼 있었다.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음식이 서빙될 때마다 벽을 채운 3D 그래픽 영상이 달라졌고 음악과 공간의 진동도 함께 변했다. 달리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몽환적인 장면도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펼쳐졌다.

크런치 아래 산초와 성게알을 버무린 크림 요리 ‘어스본’ [사진=장주영 기자]
한 입의 음식을 먹는 동안 눈앞에서는 영상이 움직이고, 음악이 귀를 채웠으며 진동이 몸으로 전해졌다. 음식의 맛과 향까지 더해지면서 미각·시각·후각·촉각·청각이 동시에 움직였다. 파인다이닝을 별도의 부대 프로그램으로 붙인 것이 아니라 ‘꿈에서는 오감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설정 자체를 식사 경험으로 옮긴 셈이다.
시몬스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표현하려 한 ‘꿈’도 이 지점에서 선명해진다. 현실에서는 각각 구분되는 감각과 경험이 꿈에서는 뒤섞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듯 관객 역시 무용과 음악을 지나 미식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현실의 감각과 조금씩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은 다시 ‘깨어남’이다. 꿈의 공간을 빠져나오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설정된 한 소년과 피아노가 등장한다. 소년이 건반을 누르는 순간 꿈에서 축적한 영감이 현실의 언어로 바뀐다는 설정이다. 잠에서 깬 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을 하나의 장면으로 표현했다.

‘깨어남’을 공연중인 소년과 무용수들의 모습 [사진=장주영 기자]
◆ 매트리스 대신 경험을 판다…시몬스의 브랜딩 공식
시몬스는 잠들기 직전의 숨결부터 꿈속에서 뒤섞이는 감각, 깨어난 뒤 찾아오는 영감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어 침대 없이도 ‘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구성은 시몬스가 그동안 이어온 이른바 ‘침대 없는 침대 브랜딩’의 연장선으로도 읽힌다.
시몬스는 과거 매트리스가 등장하지 않는 ‘침대 없는 침대 광고’를 선보였고, 제품 판매보다 문화적 경험에 집중한 ‘침대 없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해왔다. 이번에도 제품 자체를 설명하기보다 수면이라는 브랜드의 본질적인 주제를 공연과 음악, 영상, 미식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 반응도 빠르게 나타났다. 일반 관람객에게도 문을 연 이번 프로젝트는 사전 예약을 시작한 지 1분 만에 전 회차가 마감됐다. 하루 오후 2시와 5시 두 차례, 사흘간만 진행되는 만큼 제한된 인원만 경험할 수 있다.
매트리스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잠’과 ‘꿈’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침대의 기능을 설명하는 대신 그 위에서 보내는 시간과 감각을 보여준 것이다.
‘침대 없는 침대 광고’와 ‘침대 없는 팝업스토어’를 지나 이번에는 ‘침대 없는 꿈’이다. 제품을 감추면서 오히려 브랜드가 무엇을 파는지 선명하게 만드는 시몬스식 브랜딩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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