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경제

“실수요자 원성에 총량규제 빗장 풀었다”…갈지자 정책에 꼬인 은행권 셈법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8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 및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과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이호연기자] 정부가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1.5%에서 3%로 두 배 높였다. 연초 가계부채를 강하게 억제하기 위해 대출 총량을 조였지만, 은행들의 대출 여력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잔금대출 등 실수요자 대출까지 막힐 우려가 커지자 수개월 만에 공급 여력을 다시 늘린 것이다.

다만 대출 규제를 전면적으로 푸는 것은 아니다. 추가로 생기는 대출 여력은 잔금·중도금·이주비 등 주택 공급과 연결된 대출과 청년·실수요자에게 우선 배분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출을 얼마나 늘릴지는 금융회사에 상당 부분 맡긴다.

은행들은 복잡한 셈법에 놓이게 됐다.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대출은 늘려야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세와 부동산 시장을 다시 자극해서도 안 된다. 총량 한도가 늘었다고 일반 주택담보대출까지 곧바로 크게 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13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기존 1.5%에서 3% 수준으로 상향했다.

가계대출 잔액을 약 1800조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1.5%는 약 27조원, 3%는 약 54조원이다. 기존 목표와 비교하면 연간 가계대출 증가 여력이 약 27조원 늘어나는 셈이다.

여기서 54조원은 앞으로 5개월 동안 새롭게 시장에 풀리는 돈이 아니다. 올해 전체 가계대출 잔액이 지난해 말보다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연간 관리 목표다. 이미 올해 늘어난 대출을 제외한 나머지가 하반기 금융회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

정부가 연중에 총량 목표를 다시 손본 것은 은행권의 대출 여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줄었기 때문이다.

상반기 주택 거래가 늘어난 데다 증시 호황에 따른 ‘빚투’ 수요까지 겹치면서 가계대출이 빠르게 증가했다. 일부 은행은 연간 관리 목표를 넘어서면서 주담대 한도를 줄이거나 대출 모집을 제한했다.

인터넷은행에서는 하루에 취급할 수 있는 주담대 물량을 제한하면서 고객들이 대출 신청이 열리는 시간에 몰리는 이른바 ‘주담대 오픈런’도 벌어졌다.

특히 하반기 입주를 앞둔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잔금대출을 제때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경기 수원 매교역 ‘펠루시드’ 입주예정자가 부동산 정책 대국민 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잔금대출 문제를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조합원에게 지급되는 이주비대출까지 금융회사의 가계대출 총량에 포함되면서 주택 공급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이 전체 대출 한도를 깎아 먹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이에 따라 총량을 늘리는 동시에 대출을 용도별로 나눠 관리하기로 했다.

재건축·재개발 이주비와 신축 주택의 중도금·잔금대출 등 주택 공급과 직접 관련된 주담대는 일반 가계대출과 구분해 별도로 관리한다. 늘어난 대출 여력도 실수요자와 청년층에 우선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가계부채 총량관리 목표를 연초 1.5%로 설정했을 때와 달리 4~5월 주택 거래량이 크게 늘었고 자산시장 상황 등으로 가계대출 취급 규모도 확대됐다”며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총량관리 수준을 조정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조정 이후 다시 대출을 급격하게 조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신 처장은 정책 변화가 대출 수요를 오히려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에 “기본적으로 총량관리는 연도별로 하고 있고 남은 5개월 동안 총량관리 여력을 2배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다시 긴축 기조로 돌아서 주택금융 이용자들의 불편이 커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총량 목표가 두 배로 늘었다고 대출 문턱이 곧바로 크게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개별 금융회사가 추가로 취급할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일률적으로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반기에 이미 대출을 얼마나 늘렸는지, 기존 목표를 얼마나 소진했는지 등에 따라 은행별 추가 여력이 달라질 수 있다.

늘어난 여력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잔금·중도금·이주비 등 집단대출에 먼저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일반 주택 구입자가 받는 개별 주담대나 신용대출까지 큰 폭으로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둘러싼 문제도 남는다. 금융회사들은 연초 정부가 제시한 총량 목표를 기준으로 1년간 대출 공급 계획을 세우고 금리와 한도, 영업점별 취급 규모 등을 조정해 왔다. 연중 관리 목표가 크게 달라지면서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대출 운용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증가율 목표가 두 배로 높아졌지만 이번 조치는 실수요자의 대출 숨통을 틔우기 위한 것이지 가계대출 규제를 전면 완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은행마다 추가로 늘릴 수 있는 대출 규모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단지는 잔금대출만 수천억원에서 1조원에 이를 수 있고 하반기 입주 물량도 적지 않다”며 “이번 조치만으로 은행들의 대출 여력이 넉넉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출 공급을 지나치게 확대할 경우 부동산 시장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도 금융권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이 관계자는 “대출이 크게 풀린다는 신호가 시장에 전달되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며 “은행들도 일반 주담대까지 한꺼번에 완화하기보다는 실수요 대출을 중심으로 공급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14일 금융위원장 주재 ‘확대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금융권별 총량 조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디지털데일리 네이버 메인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