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디세이' 포스터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콘텐츠뷰’는 OTT시리즈, 영화, 드라마 등 국내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사회·경제·문화적 현상으로 재해석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조은별기자]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와 집에서 TV나 OTT로 봐야 하는 영화의 경계가 선명해지고 있는 지금,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작품은 단연 전자에 속합니다. 팬데믹 이후 선보인 영화 ‘덩케르크’의 해상신, ‘오펜하이머’의 핵폭발 장면은 극장에서 관람해야 영화적 쾌감이 커지는 작품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AI로 만든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시대지만 실사 촬영을 고집하는 놀런 감독은 ‘덩케르크’에서 영화 전체의 70%를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고 ‘오펜하이머’는 CG를 사용하지 않고 핵무기 폭발 재현에 성공한데다 영화 역사상 최초로 흑백 아이맥스 필름 촬영을 도입했습니다.
5일 개봉하는 ‘오디세이’는 ‘다크나이트’부터 ‘오펜하이머’에 이르는 놀런 감독 필모그래피의 정점입니다. 3000년 전 기록된 호메루스의 인류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놀런식’으로 재해석했습니다.

100%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 '오디세이' [사진=유니버설픽쳐스]
‘재해석’이라 해서 원전에서 뭔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영화는 원전에 충실하되 ‘회귀’라는 콘셉트로 비선형 촬영을 이어온 감독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표출했습니다. ‘메멘토’에서 선보인 비선형적 연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인셉션’의 귀환 모티프, 그리고 앞서 언급한 ‘덩케르크’의 해상신 등이 ‘오디세이’에 집대성됐습니다.
놀런 감독은 특유의 깊은 통찰과 빼어난 영상미,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통해 인류에게 전해지는 고전이 왜 중요한지, 21세기 OTT 시대, 극장의 가치를 172분의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는 10여 년에 걸친 전쟁을 트로이의 목마 작전으로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10년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렸습니다. 그가 자리를 비운 20여 년, 왕이 사라진 이타카에서는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구혼자들이 일명 ‘제우스의 법칙’을 강요하며 궁을 점령하고, 후계자인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의 목숨까지 위협하며 행패를 부립니다.

영화 '오디세이'의 한 장면 [사진=유니버설픽쳐스]
‘제우스의 법칙’은 손님 가운데 인간으로 변장한 제우스가 있을 수 있으니 손님을 제우스 대하듯 성심껏 대하라는 그리스의 규범입니다. 말이 좋아 규범이지, 10여년 동안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했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원작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이는 전쟁 전 20여 년간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신탁을 받고 참전을 고민한 바 있습니다. 우스개소리로 그리스 신화 시대 병역기피자란 말이 돌 정도죠. 영화는 군입대 전 오디세우스가 집에 가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던 사연은 과감히 생략합니다. 오히려 참전 뒤 살아남은 한 인간이 영웅의 오만함을 벗고 회한과 기억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놀런 감독은 바다의 여신 칼립소의 섬에 머무는 오디세우스의 정신적 상처와 시간의 흐름을 교차하는 비선형 연출로 다시 한 번 장기를 발휘합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은 자신 때문에 망자가 된 전우들의 영혼과 대화하며 한 인간의 목숨이 승리보다 가치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영화 '오디세이'의 한장면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실사 촬영을 고집하는 감독이 신화 속 신들을 묘사한 장면도 놀랍습니다. 신의 분노를 산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귀가 여정 가운데 만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로페스는 실제 그리스 남부의 한 동굴에서 18m 높이 로봇 거인을 세우고 자연광으로 찍었습니다.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마녀 키르케, 아름다운 노래로 인간을 홀리는 세이렌 등 신화 속 주인공들이 놀런의 연출을 통해 스크린에 펼쳐집니다.
압권은 단연 트로이의 목마입니다. 높이 10.6m, 무게 3.6톤짜리 진짜 목마에 배우들이 직접 들어가 생과 사를 오가는 긴박한 순간을 연기합니다. 목마 안에 흘러 들어온 밀물 때문에 질식사한 병사들, 목마 안을 조사하기 위해 트로이 병사들이 마구 쑤신 칼에 찔렸지만 행여 존재를 들킬 것을 우려한 아군 손에 의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갔던 병사들의 한이 목마 안에 서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해외 평론가들이 오디세우스가 성을 함락하는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꼽지만 개인적으로 오디세우스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갈 수 밖에 없었던 병사들을 묘사한 놀런의 세심함에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싶습니다.

영화 '오디세이'의 한장면 [사진=유니버설픽쳐스]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합니다. 특히 주인공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은 리더로서의 무게와 한 인간의 죄책감,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는 평범한 한 사내의 열망을 깊이있게 표현하며 감정적 울림을 안깁니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페넬로페는 품격있으면서도 주체성을 지닌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톰 홀랜드는 ‘스파이더맨’과 달리 본적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텔레마코스 연기를 섬세히 펼칩니다. 젠데이아 역시 군림하기보다 오디세우스의 회한을 들어주는 아테네 여신으로서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영화 '오디세이'의 한장면 [사진=유니버설픽쳐스]
해외에서 논란이 일었던 흑인 배우 루피타 뇽의 스파을타 왕비 헬레네 연기나 트랜스젠더 배우 엘리엇 페이지가 시논 연기는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닙니다.
‘오디세이’는 보는 이들마다 다른 감동과 울림을 안기지만 이 영화가 왜 영화와 극장의 가치를 증명하는지는 관객 모두가 동의하리라 여깁니다. 지난 달 미국에서 개봉 직후 입장수익 1억 달러를 넘어섰고 유럽과 중국, 일본 등 모든 공개 국가에서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는 이유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최근 진행한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원하는 답을 떠올리길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습니다. 이제 극장의 시간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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