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2020년 10월12일 경남 진해해군사령부 앞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밀 유출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한화오션이 국내 방산 역사상 가장 치열한 수주전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에서 승기를 잡았다.
1일 한화오션은 방위사업청으로부터 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통보받았다. KDDX 사업은 7000톤급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확보하는 첫 국산 이지스급 구축함 사업이다. 후속함을 포함한 총사업비는 약 7조8000억원 규모다.
한화오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KDDX 개념설계를 맡은 지 14년만에 거둔 성과다. 통상 기본설계 업체(HD현대중공업)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맡는다는 관례가 깨진 사례이기도 하다.
◆군사기밀 유출이 뒤흔든 판…기자회견에 고소전까지
2012년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은 KDDX 개념설계를 수행하며 통합전기추진체계, 통합마스트, 통합네트워크, 병력절감 자동화 기술 등 첨단 함정 핵심 기술 기반을 확보했다.
개념설계 다음 단계는 기본설계로 이어진다. 기본설계 사업자를 차지하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통상적으로 맡게 되는 만큼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 간 경쟁 구도는 예견돼 있었다.
기본설계 사업자를 선정하기 전, 지난 2018년 4월 현대중공업에 대한 기무사 불시 보안 감사 도중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서버에서 해군 기밀문서를 포함해 KDDX 개념설계도까지 무더기로 나왔다. 2013년 초부터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직원들이 해군본부 함정기술처를 수차례 방문하며 KDDX 기밀자료를 촬영한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사업자 선정 결과 기본설계 사업은 HD현대중공업이 가져갔다. 두 회사 점수 차는 불과 0.056점이었다.
HD현대중공업이 우위를 점한 모습이었지만 군사기밀 유출 사건 파장은 계속됐다. 2022년~2023년에 걸쳐 임직원 9명이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방사청은 이를 근거로 HD현대중공업에 보안 감점을 적용했다. 이 1.2점 감점은 오늘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2023년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후 양사 갈등은 수면 위로 본격 올라왔다. 2024년 3월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하는 한편 기자회견을 열어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군사기밀 유출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범법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사실관계를 왜곡한 주장"이라고 반박했고 명예훼손 고소까지 이어졌다.
극적으로 양사가 고소를 취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섰지만 KDDX를 둘러싼 논란은 꺼지지 않았다.
한화오션은 KDDX 사업을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로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양사 간 경쟁은 멈추지 않았다. 방사청은 수의계약과 경쟁입찰뿐 아니라 공동설계를 포함한 여러 방안을 검토했으나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KDDX 사업은 2년여간 표류하며 지연됐다.

2024년 3월5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한화오션의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회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발언 이후 급물살…2년 표류 끝내고 경쟁입찰로 전환
분위기가 바뀌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5일 충남 타운홀미팅에서 "방위사업청장도 (현장에) 오셨는데, 군사기밀 빼돌려서 처벌받은 데다가 수의계약 주느니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크나 작으나 비리는 비리"라고 언급했다.
방산업계는 사실상 KDDX 사업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지명경쟁입찰 방식을 확정하며 멈춰 있던 사업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HD현대중공업에서 반발했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이 한화오션에 제안요청서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포함된 기본설계 결과물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보안감점 문제도 지적했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에 부여된 보안감점 1.2점을 2026년 12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이 보안감점 연장 여부를 사전에 명확히 고지하지 않은 채 입찰 과정에서 적용했다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영업비밀 침해금지 가처분과 보안감점 연장 적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의 법적 조치에도 KDDX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7월 중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결국 기술평가에서 한화오션이 93.9542점, HD현대중공업이 93.3675점을 받으며 한화오션이 0.5867점 차이로 우위에 섰다. 보안 감점이 승부를 결정했다는 평가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KDDX 조감도.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 잠수함 명가에서 종합 해양방산 기업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화오션은 정부와 협상을 거쳐 사업 정상화와 적기 전력화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한화오션이 방사청과 본계약을 맺게 되면 KDDX 선도함은 상세설계를 거쳐 2032년 말 해군에 인도될 전망이다. 방사청은 2028년 말부터 나머지 후속함 5척에 대한 발주를 시작해 2036년까지 모든 후속함을 해군에 인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이번 KDDX 사업을 통해 방산 포트폴리오를 잠수함뿐 아니라 수상함까지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화그룹 육·해·공 방산 수직계열화 전략에도 중요한 발판으로 평가된다.
KDDX는 한화오션이 2022년 한화그룹 편입 이후 처음 도전한 차세대 수상함 사업이다. 향후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이지스 구축함급 사업 수행 실적이 필요하다. 특히 상세설계 단계에서는 함정 전투체계와 추진체계, 각종 전장 장비 통합 과정이 이뤄지는 만큼 한화그룹 방산 계열사 기술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잠수함 사업에 두각을 드러내며 장보고-Ⅰ·Ⅱ·Ⅲ급 디젤 잠수함 건조 경험이 있다. 최근 캐나다 해군 장병을 태워 태평양을 횡단한 3000톤급 도산안창호함(장보고-Ⅲ) 설계·건조도 한화오션 작품이다. 다만 군함 분야에서 수상함은 HD현대중공업이 특화돼 있었다.
한화오션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첨단 함정 기술력과 사업 수행 역량을 바탕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만큼 정부와 협상에 성실히 임해 사업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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