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글로벌 테크 시장은 AI 공급망의 독점 심화와 지정학적 규제가 맞물리며 유례없는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이에 <디지털데일리> 디지털산업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후방 부품 산업의 변화가 전방 완제품과 플랫폼 생태계의 거시적 헤게모니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현장의 생생한 팩트와 심층 분석을 바탕으로 가치사슬의 성과를 냉정히 결산하고 하반기 주도권 향방을 조망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공간제작소가 제작한 20평대 목조 모듈러 주택 외관. [사진=옥송이기자]
AI가전 넘어 공간 단위 경험 경쟁…B2B 수요 공략 본격화
[디지털데일리 옥송이기자] 경계의 붕괴. 올해 상반기 국내 가전 시장을 관통한 키워드다. 전통적인 생활가전의 영역이 한층 흐릿해지면서다. 그간 가전업계의 AI 경쟁이 냉장고·세탁기·TV 등 개별 제품의 성능과 편의성을 높이는 데 집중됐다면, 올해 들어서는 집안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고 AI를 매개로 공간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냉장고·세탁기·TV 등 개별 제품을 판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나아가 ‘공간 단위의 사용 경험’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AI홈 플랫폼을 중심으로 주거 공간과 모빌리티, 로보틱스 영역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진출하며 새로운 B2B 수요 발굴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른바 집이 사용자의 생활 패턴과 상황을 읽고 먼저 반응하는 ‘홈 AI 에이전트’ 시대로의 진입이 본격화된 셈이다.
대표적인 변화는 모듈러 주택에서 나타난다. 기존에 건설사와 시공업체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주거 공간에 가전사들이 직접 진출한 것이다. 모듈러 주택은 구조물 상당 부분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설치하는 방식이다. 설계 단계부터 가전과 공조, IoT 기기 위치를 반영할 수 있어 AI홈 구현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모듈러 주택 ‘스마트코티지’를 앞세워 AI홈 영역을 집 밖으로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가전을 넣는 수준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하나의 AI홈 플랫폼처럼 설계하는 방식이다. 실제 스마트코티지 내부에는 식기세척기, 워시타워, 공조 시스템, 스마트 도어락, CCTV, 전동 블라인드 등이 연결돼 있으며 씽큐 기반으로 통합 관리된다.
최근에는 20평대 제품군까지 확대했다. LG전자는 지난달 22평형 ‘MONO Core 72’와 24평형 ‘MONO Core 82’를 선보이며 스마트코티지 라인업을 넓혔다. 세컨드하우스를 넘어 기업 연수원, 숙박시설, 레저 공간 등 B2B 시장까지 겨냥한다. 신제품에는 AI 홈 허브 ‘씽큐 온’을 비롯해 HVAC, IoT 기기가 적용된다.
스마트코티지는 가전을 개별 제품이 아닌 생활 공간의 구성 요소로 묶어 제안한다는 점에서 기존 생활가전 사업과 결이 다르다. 냉장고나 세탁기를 따로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거·숙박·레저 공간 안에서 공조와 IoT, AI홈 플랫폼을 함께 구현하는 방식이다. LG전자가 스마트코티지를 세컨드하우스뿐 아니라 파인스테이, 레저·관광 시설 등으로 확장하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10월 LG전자가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선보인 'LG 스마트코티지' 신모델. [사진=옥송이기자]
삼성전자 역시 비슷한 흐름에 올라탔다. 다만 접근 방식은 다르다. LG전자가 공간 자체를 판매하는 구조라면, 삼성전자는 모듈러 주택 기업과 손잡고 AI홈 솔루션을 결합하는 협업형 모델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공간제작소와 함께 ‘삼성 AI 모듈러 홈’을 공개했다. 공간제작소가 주택을 짓고, 삼성전자는 설계 단계부터 AI 가전과 홈 IoT를 넣는 방식이다. 주택 판매 주체가 되기보다 모듈러 주택에 자사 AI홈 솔루션을 붙여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삼성 AI 모듈러 홈은 단독주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화재·누수, 에너지 관리, 생활 자동화 수요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AI 도어캠과 홈캠, 로봇청소기, 스마트싱스 기반 자동화 기능을 연동해 외부인 감지, 부재 중 방문 확인, 실내 이상 상황 점검 등을 지원하는 식이다. 수면 모드나 외출 모드처럼 조명, 커튼, 냉난방, 공기청정기 등을 한 번에 제어하는 생활 루틴도 AI홈 시나리오의 일부로 제시됐다.
이 같은 구성이 가능한 배경에는 모듈러 주택의 제작 방식이 있다. 모듈러 주택은 공장에서 상당 부분을 사전 제작하는 만큼 가전과 IoT 센서, 배선, 급배수 구조를 설계 단계부터 함께 반영할 수 있다. 완공 후 스마트홈 기능을 추가하는 기존 방식보다 공간 제약이 적고 통합 설계가 쉽다는 점이 AI홈 확장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삼성전자가 주목한 수요는 세컨드하우스보다 실거주 단독주택이다.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보안과 에너지 관리 부담이 크고, 사용자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영역도 넓다. 삼성전자는 이를 AI홈 솔루션으로 보완해 단독주택 수요를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단독주택을 시작으로 향후 아파트, 빌딩, 오피스, 숙박시설, 공공주택 등으로 AI홈 적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LG전자 슈필라움. 차량 내부를 LG 가전 제품으로 채웠다.
이뿐 아니라 ‘공간의 이동’도 두드러졌다. AI홈이 더 이상 집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다. LG전자는 AI 가전 구현 공간을 차량으로도 끌고 왔다. AI 모빌리티 공간 솔루션 ‘슈필라움’이 대표적이다. 슈필라움은 기아 PV5 차량을 기반으로 냉장고, 광파오븐, 와인셀러 등 LG전자의 가전과 맞춤형 가구를 결합한 형태다. 차량 내부를 이동수단이 아닌 생활 공간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LG전자는 슈필라움을 차량과 가전을 결합한 구독형 공간 솔루션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모듈러 주택이 고정된 주거 공간에서의 AI홈 확장이라면, 슈필라움은 이동하는 공간으로 AI홈 개념을 넓힌 사례다.
로봇 역시 상반기 가전업계 핵심 화두 중 하나였다. 특히 로봇이 청소 기기를 넘어 ‘움직이는 AI 에이전트’ 역할로 확대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삼성전자는 로봇청소기를 이동형 홈 모니터링 기기로 제시한다. 고정형 홈캠이 한 방향을 보는 데 그친다면 로봇청소기는 집 안을 이동하며 사각지대를 확인하고 반려동물 상태나 이상 상황을 점검하는 식이다. 청소기가 바닥을 닦는 기기를 넘어 실내를 살피는 또 다른 눈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LG전자는 한발 더 나아갔다. 올해 초 CES 2026에서 양팔형 홈로봇 ‘클로이드’를 공개하며 이를 ‘가정 전문 에이전트’로 정의했다. 단순 음성 비서가 아니라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가사 노동을 대신 수행하는 로봇이다. 당시 류재철 LG전자 CEO는 “에이전트 가전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때 AI홈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개된 시나리오에서는 클로이드가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제어하고, 빨래를 개거나 식기를 정리하는 모습이 포함됐다.

iF디자인 어워드 2026에서 수상한 홈로봇 ‘LG 클로이드’ [사진=LG전자]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 역시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LG전자는 이달 1일 CEO 직속 ‘로보틱스사업센터’를 신설했다. 단순 연구 조직이 아니라 사업개발·영업·오퍼레이션을 통합한 사업 조직 형태다. 가정용 로봇부터 산업·상업용 로봇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센터 산하에는 로봇 학습용 데이터팩토리 전담 조직도 배치된다. 로봇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데이터 확보와 학습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LG전자는 이를 통해 로봇파운데이션모델을 고도화하고, 실제 사업과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를 로보틱스 사업 기반을 다지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방향성도 분명히 했다.
상반기 가전업계의 변화는 제품 경쟁을 넘어 영역 확장으로 요약된다. 개별 가전의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사람의 생활 맥락과 공간 전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가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하반기에는 이 흐름이 더욱 구체화될 전망이다. AI홈은 단순 연결성을 넘어 실제 서비스와 수익 모델 단계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모듈러 주택은 세컨드하우스뿐 아니라 실거주·B2B 영역으로 확대되고, 로봇은 청소를 넘어 보안·가사·돌봄 영역까지 역할이 넓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가전사들이 AI홈을 앞세워 주거와 모빌리티, 로봇 영역까지 넓히는 것은 기존 가전 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며 “하반기에는 B2B 고객을 대상으로 공간 단위 솔루션을 얼마나 구체화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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