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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스톡홀름] ④ 구광모·정의선 만난 젠슨 황… 한국 제조 밸류체인 ‘록인'

[인더스트리 AI] 테크 진영 발목 잡는 제조 동맹…엔비디아와 국내 대기업의 동상이몽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양재 사옥에서 KIA의 전기차 PV-5에 올라타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 기간 중 테크 기업을 넘어 현대자동차, LG, 두산 등 국내 대표 제조 대기업들과 연쇄 회동을 가진 것을 두고 반도체 업계의 해석이 분분하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주행과 로봇 분야의 협력 확대를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미국 빅테크 중심의 칩 독립 움직임에 맞서 한국의 제조 기반을 엔비디아의 독점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예속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황 CEO는 한국 방문 직전인 1일 대만 타이베이 컴퓨텍스 2026 현장에서 “한국은 엔비디아 생태계의 핵심이며 과학, 로보틱스, AI 팩토리 지원 등 할 일이 많다”라며 로보틱스 시장을 향한 정조준 의사를 명확히 했다. 하드웨어 독점에 이어 미래 모빌리티와 로봇의 ‘두뇌(OS)’까지 장악해 기술 장벽을 한층 더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피지컬 AI’ 영토 확장…제조 거인들을 겨냥한 젠슨 황의 셈법

엔비디아가 이처럼 한국의 제조 대기업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거대언어모델(LLM) 중심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넘어,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생태계를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이 가상 공간의 소프트웨어 칩 내재화에 집중하는 사이, 엔비디아는 자동차와 로봇이라는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눈을 돌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독보적인 제조 역량과 부품 공급망을 갖춘 우리나라 기업들은 엔비디아에 매력적인 표적이 됐다. 황 CEO는 방한 나흘째인 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를 직접 방문해 구광모 LG그룹 회장 및 최고경영진과 최고경영진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사는 엔비디아의 로봇 개발 가속화 파운데이션 모델인 ‘아이작 GR00T(Isaac GR00T)’를 기반으로 한 레퍼런스 로봇 공동 개발 및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 하이페리온(Drive Hyperion)’ 접목 등 전방위적 협력 방안을 확정했다.

회의 직후 젠슨 황 CEO는 LG의 제조 역량을 치켜세우며 “LG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이다. 우리가 협력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로보틱스다. AI와 모터 기술, 미래 데이터센터 설계 작업까지 함께하고 있다. 로보틱스는 전자 기술과 기계 시스템, 인공지능이 융합되는 분야다. LG와 AI뿐 아니라 모터 기술과 기계 시스템 분야에서도 함께 협력하고 있다. 휴머노이드와 미래 로보틱스 기술 구현을 위해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CEO의 발언대로 LG는 액추에이터, 고성능 센싱 모듈, 배터리 등 휴머노이드를 즉각 양산할 수 있는 물리적 밸류체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같은 하드웨어 생산 기지에 자율주행 및 로봇 제어 OS인 ‘아이작’과 ‘하이페리온’을 이식함으로써, 한국 기업들이 자사 소프트웨어 규격을 벗어날 수 없도록 묶어두는 록인(Lock-in)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미 현대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필두로 피지컬 AI 인지도를 키우고 두산로보틱스가 협동로봇 분야에서 전방위 협력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국내 제조 핵심 축이 도미노처럼 엔비디아의 생태계로 진입하는 형국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왼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6월8일 네이버 1784 사옥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 반 엔비디아 칩 ‘마하’의 추격과 소프트웨어 우회 전략

이러한 전방위적 소프트웨어 그물망은 국내 테크 진영이 추진 중인 독자 칩 개발 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 네이버와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GPU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초경량 AI 반도체인 ‘마하(MACH)’ 시리즈 개발과 성능 검증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비싼 엔비디아 하드웨어를 쓰지 않고도 저전력·고효율 추론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 역시 자체 NPU 기반의 추론 특화 칩을 앞세워 독자 생태계 확장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젠슨 황 CEO가 국내 제조 대기업들의 모빌리티와 로봇 두뇌에 엔비디아 OS를 선제적으로 넣으면서, 하드웨어 독립을 꿈꾸는 국내 반도체 진영의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하드웨어 부품이 싸고 좋게 나오더라도, 상위 단의 자율주행 시스템과 로봇 제어 프로그램이 엔비디아의 ‘쿠다(CUDA)’ 및 ‘아이작’ 환경에 길들여져 있다면 호환성 장벽 때문에 국산 반도체를 채택하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들이 하드웨어 독립을 외치는 사이, 제조 대기업들이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국내 산업계 내부의 모순적 역학 관계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에 들어서는 모습.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옥송이기자]

◆ 스마트폰 잔혹사의 재림…‘제조업 패러다임’ 경고

일각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6세대·8세대 HBM을 납품하고, 액체 냉각 기반의 기가와트급 차세대 AI 팩토리 인프라를 국내에 유치하더라도, 핵심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주도권을 놓친다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스마트폰 도입 초창기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 삼성전자와 국내 제조사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 배터리, 모바일 하드웨어를 제조해 전 세계에 판매했으나, 모바일 생태계의 권력과 막대한 스토어 수익은 독자적인 운영체제(OS)를 쥔 애플(iOS)과 구글(안드로이드)이 독식했다. 하드웨어 제조사는 치열한 가격 경쟁과 부품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린 반면,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들은 손쉽게 ‘통행세’를 챙겼다.

AI 시대 역시 본질은 다르지 않다. 오픈AI의 GPT, 구글의 제미나이와 같은 글로벌 파운데이션 모델에 서비스를 의존하고, 하부의 하드웨어와 로봇 제어 시스템마저 엔비디아의 OS에 100% 예속된다면 한국 테크 산업은 막대한 인프라 투자 비용을 감당하고도 핵심 수익을 미국 플랫폼 기업에 바치는 ‘하청 기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젠슨 황 CEO가 던진 달콤한 파트너십 제안의 이면을 냉정하게 파헤치고, 하드웨어 공급망 참여와 동시에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및 칩 생태계를 육성하는 투트랙 전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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