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학부모에게 보내던 ‘가정통신문’처럼, ‘강소현의 방송통신문’은 방송통신 시장을 둘러싼 정책 흐름을 전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발표보다 그 이면의 정책 방향과 업계 기류에 주목하며, 지금의 논의가 시장에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사진=챗GPT 이미지생성 모델이 제작한 그림]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이 결국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CJ ENM과 LG헬로비전에 이어 이번에는 SPOTV까지 블랙아웃(방송송출중단)을 예고한 것이다.
업계에선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콘텐츠 사용료 갈등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정부 역시 이를 인지하고 협의체와 연구반 운영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왔지만 수년째 깜깜무소식이다.
오히려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사업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 임시 봉합하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못한 채 구조적 갈등으로 번졌다는 지적이다.
◆ 신사업 접은 LG헬로·파산설 돈 SPOTV…블랙아웃 부른 생존전쟁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헬로비전은 전날(1일) 자사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SPOTV, SPOTV2, SPOTV 골프앤헬스(SPOTV Golf&Health), SPOTV 플러스 등 SPOTV 계열 실시간 채널 송출을 오는 7월 1일부로 종료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전국 케이블TV(SO) 가입자 전체다.
LG헬로비전은 공지를 통해 "채널 공급사의 요청"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선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콘텐츠 사용료는 프로그램 제공 대가로 IPTV·케이블TV 등 유료방송 사업자가 시청자로부터 받은 수신료 일부를 SPOTV와 같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배분하는 구조다.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콘텐츠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로 유료방송 사업자와 PP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적정 배분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PP는 유료방송사가 자신들의 콘텐츠로 가입자를 확보했으니 콘텐츠 사용료를 더 줘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유료방송사는 가입자 확보에서 플랫폼이 기여한 부분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이번 사안을 단순 개별 사업자 간 분쟁으로만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방송산업 전반의 수익성 악화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누적된 구조적 갈등이 표면화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케이블TV 업계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3년 케이블TV 매출은 전년 대비 3.9% 감소한 1조7335억원, 가입자는 1.49% 줄어든 1258만6391명으로 집계됐다.
매출과 가입자가 동반 감소하는 가운데 유료방송 사업자 가운데 매출 대비 콘텐츠 대가 지급 비중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LG헬로비전은 지난해부터 수익성이 낮은 사업 정리에 나선 상황이다. 지역채널 커머스 플랫폼 '제철장터'와 인천 복합문화공간 '뮤지엄엘' 운영을 종료하는 등 경영 효율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SPOTV를 비롯한 PP 업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광고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SPOTV를 둘러싼 파산설까지 제기될 정도로 경영 환경이 악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 늦은만큼 늦었다…정부 결정 미룬 4년, 시장 상황은 악화
이번 콘텐츠 사용료 갈등이 업계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더욱 악화된 경영상황을 직면한 딜라이브도 전체 PP에 콘텐츠 사용료를 지연 지급한다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업계는 정부 차원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은 개인 간 거래가 아닌 집단 간 거래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라며 “이번 거래 기준은 전체 산업의 기준이 처음으로 정해지는 사례인만큼 제작자·플랫폼·이용자 등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정부가 개입해 그 적정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도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건 이미 4년 전이다.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게임' 흥행 이후 K-콘텐츠 가치가 높아지자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간 합리적인 수익 배분 기준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1년부터 협의체와 연구반을 꾸려 논의를 이어왔고, 2023년에는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3차 초안까지 마련해 사업자 의견 수렴도 진행했다.
다만 이후 이해관계자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논의는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 최근에는 콘텐츠 사용료 문제를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기조가 강조되면서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 역시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 자율을 허용하지 않는 정책 환경은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료방송 요금 규제다.
2022년 유료방송 요금 승인제가 신고제로 완화됐지만, '수리'를 전제로 한 신고제인 만큼 실질적인 요금 자율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신고 이후에도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해 요금 변경으로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료방송 사업자는 콘텐츠 사용료 인상분을 요금에 반영하거나 상품 구성을 탄력적으로 변경하기 어렵고, PP 역시 송출 중단을 통해 협상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시장 자율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시장 참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돼 있는 셈이다.
◆ 블랙아웃의 대가는 결국 시청자 몫…이젠 결단의 시간
장기적으로 문제가 방치될 경우 ‘방송판 슈링크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제품 용량만 줄어드는 ‘슈링크플레이션’처럼 이용자가 부담하는 유료방송 요금은 유지되는 반면 상품의 품질이 낮아지면서 소비자 편익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SPOTV는 프로야구와 프리미어리그(EPL), PGA 골프 등 핵심 스포츠 콘텐츠를 공급하는 채널인 만큼 실제 송출 중단이 현실화될 경우 이용자 체감도는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소관부처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콘텐츠 사용료 갈등 중재안 마련을 포함한 정책연구반을 새로 꾸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콘텐츠 대가산정 가이드라인 논의만 4년째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연구반이 해법이 될 수 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책임은 특히 무겁다. 방미통위는 방송 정책 정상화를 내세워 지난해 출범했지만 위원회 구성 지연으로 정책 공백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사이 산업의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 전가됐다.
결국 학계에선 지속 가능한 콘텐츠 생태계 구축을 위해 소관부처의 명확한 의지와 정책 추진력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시장 내 모든 사업자가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에서 무엇이 ‘상생’의 해법이 될 수 있는지 누구도 확답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소관부처인 방미통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콘텐츠 사용료의 경우 이미 수차례 연구반과 협의체 논의를 거치며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상태다. 더 이상의 논의보단 정부의 정책적 결단과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LG헬로비전 관계자는 “PP측의 요청에 따라 7월 1일 부로 해당 채널 송출 중단될 예정”이라며 “시청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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