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5월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유채리 기자]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한 구절이다.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6주년이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무게를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스타벅스코리아는 5월18일 '탱크 데이', '책상에 탁' 같은 문구를 텀블러 프로모션 마케팅에 사용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 26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고 그룹 측은 감사단을 꾸려 진행한 자체 진상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러나 해명은 도리어 몇 가지 씁쓸한 지점을 남겼다.
신세계그룹 측은 "매출에만 신경 쓰다 보니 날짜와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매출이 중요했다면 기획 단계에서의 검토는 더 엄밀해야 했다.
고의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고의가 없었다는 것이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의도치 않은 결과라 하더라도 역사적 맥락과 피해자의 존재를 간과했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의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사과문에서 언급한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이라는 표현도 사과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물론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언은 공권력 남용과 인권 친해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단순히 교과서에서만 배우고 끝난 게 아니라 영화 등 대중 콘텐츠에서도 반복적으로 인용돼 온 표현이다. 잊지 않아야 하는 상징적인 말이어서다.
기업이 내부 시스템과 검토 절차를 갖추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감수성의 공백이 빚을 수 있는 무지에 의한 폭력과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회사 측은 해당 문구를 "인공지능(AI)에 물어봤다고 실무진들이 진술했다"고도 설명했다. AI가 학습 데이터에 따라 편향을 내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직 불완전하다는 점은 이미 널리 인식되고 있다. 이 진술이 책임 소재를 흐리는 방향으로 읽히는 이유다. 중요한 마케팅 프로모션이었다면 더욱 고심하고 신중했어야 했다.
AI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애란 작가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인간한테 있고 AI에게 없는 것을 망설임이라고 답했다. "누군가의 고민,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고 헤아리는 찰나"가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빠른 답변과 효율이 미덕인 시대에 그 망설임은 때로 비효율적이고 불완전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답은 종종 그 짧은 멈춤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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