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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디지털 금융 시대의 국가 경쟁력, 이제는 제도의 속도다

글 : 송근섭 ACAMS 한국대표,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

- 세계는 이미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에 들어섰다

- 위험을 차단하는 시대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시대로

- 한국 금융산업에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적 상상력이다

미국 백악관은 5월 19일에 금융혁신과 디지털 금융산업 육성을 핵심으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행정명령(Integrating Financial Technology Innovation into Regulatory Frameworks)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핀테크 산업 지원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근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은 이제 금융의 미래를 단순한 산업정책 차원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금융패권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디지털자산 기업과 핀테크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다. 미국은 더 이상 이들을 기존 금융질서의 주변부나 예외적 존재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 금융 인프라를 구성할 핵심 플레이어로 인정하며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있다.

세계 금융질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실시간 글로벌 송금, 블록체인 기반 금융서비스, Embedded Finance, Banking-as-a-Service(BaaS) 같은 개념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금융과 기술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지고 있으며, 기존 은행 중심의 금융 생태계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과거의 규제 패러다임 안에 머물러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의회 피크닉 행사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EPA연합뉴스]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등장하면 혁신 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보다 규제 가능성과 위험 요인을 먼저 검토하는 접근이 반복되고 있다. 디지털자산 산업 역시 명확한 입법 방향 없이 규제와 허용 사이를 오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금융회사와 핀테크 기업들은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사업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 싱가포르, 홍콩 등 주요 국가들은 이미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미래 국가전략 산업으로 인식하고 입법과 제도 정비 경쟁에 돌입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디지털 금융을 ‘관리 대상’ 중심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금융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접근은 결국 혁신기업과 인재, 그리고 자본이 해외로 이동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회와 입법권자들이 이제는 고민해야 할 중요한 변화가 있다. 디지털 금융 시대에는 금융규제의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금융규제는 위험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AI와 블록체인 기반 금융환경에서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위험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자금세탁방지(AML)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자산과 실시간 글로벌 결제 확대는 분명 새로운 위험을 동반한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자금세탁, 탈중앙화금융(DeFi)을 이용한 제재 회피, 초국경 자금 이동 확대 등은 국제사회가 실제로 우려하는 리스크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 자체를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제도권 안으로 편입해 관리 가능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접근이다. 블록체인 거래는 현금보다 높은 추적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으며, AI 기반 분석은 기존 금융기관의 전통적 AML 시스템보다 훨씬 정교한 위험 탐지가 가능하다. 결국 핵심은 혁신을 막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한 찬반 논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금융과 디지털자산을 둘러싼 논의는 종종 “허용해야 하는가, 막아야 하는가”라는 이분법적 논쟁으로 흐른다. 그러나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환경 속에서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정답 찾기가 아니다. 현재 주어진 환경과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어떤 해결 방안과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집단적 지혜가 더욱 중요하다.

디지털 금융은 이미 시작된 흐름이다. 기술의 진보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변화 자체를 막으려는 접근이 아니라, 그 변화를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고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사고다.

이 지점에서 국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지금 한국 금융산업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다. 디지털 금융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적 프레임워크다. 그러나 현재 국내 디지털 금융 관련 제도는 여러 부처와 감독기구에 분산돼 있고, 산업 육성과 금융안정성, 소비자 보호 사이의 정책 방향 역시 일관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회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금융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할 입법 논의를 본격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디지털자산과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체계를 보다 명확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은행과 핀테크, 디지털자산사업자 간 협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돼야 한다. 또한 AML 감독체계 역시 AI·블록체인 기반의 실시간 위험관리 체계로 진화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감독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입법의 관점 변화다.

디지털 금융을 단순한 투기나 위험의 영역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미래 금융 인프라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에 들어섰다. 어떤 국가가 미래 금융 인프라의 표준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향후 글로벌 금융질서의 주도권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금융 소비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기술 경쟁력도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적 상상력과 정책 속도다.

이제 국회가 답해야 한다.

한국 금융산업이 과거의 규제 체계 안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혁신과 안전을 균형 있게 결합한 새로운 금융질서로 전환할 것인지 말이다.

디지털 금융 시대의 경쟁력은 더 이상 규제를 얼마나 강하게 하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혁신을 얼마나 안전하게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고, 현실적 해답과 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국가 금융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 본 컬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근섭 ACAMS 한국대표 겸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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