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국진 전 미디어미래연구소장

[ⓒ 연합뉴스]
“100만 달러의 유혹”
1993년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은밀한 유혹(Indecent Proposal)'이 개봉되었다.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는 신혼 부부가 억만장자 존 게이지(로버트 레드포드)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아내와 하룻밤을 보내는 대가로 100만 달러를 제안하며 돈과 사랑, 신뢰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 스토리이다. 당시 이 영화는 상영되기도 전에 큰 화제를 모았고, “사랑에도 가격이 있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미국의 유명 방송 전문지인 TV가이드(TV Guide)는 영화 속 설정(100만 달러에 하룻밤)을 변형해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00만 달러를 준다면 평생 TV를 보지 않겠는가?"라는 설문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어떻게 응답했을까?
미국인 4명중 1명(25%)은 돈 대신 TV를 선택했다. 1993년 당시 100만불은 2026년 현재 실질 가치로는 2100만불에 해당된다. 25%가 TV를 선택하였다는 것은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왜 포기 못할까? 그럼 25%는 당시에 왜 그러한 응답을 하였을까?
당시 가치로 평생을 보장할수 있는 거액인 100만불을 거절하고 TV를 선택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TV를 보지 않으면 세상이 돌아가는 소식이나 친구, 동료들과의 대화 주제에서 완전히 소외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100만 달러가 있어도 TV만큼 매일매일 저렴하고 편리하게 즐거움을 줄수 있는 대체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일상에 TV시청은 중독에 가까운 습관이 되어 있었음을 알수 있다. 당시에는 TV는 세상으로 난 창(窓)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100만불에 포기 여부를 묻는 조사들은 그 이후에 다양하게 지속되고 있다.
2025년 NY 포스트(Post)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21%가 1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소셜미디어 접속권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는 과거 TV 가이드 조사에서 25%가 TV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과 유사한 수치다. 오늘날에는 소셜미디어가 현대인에게 얼마나 강력한 중독성과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준다.
양적인 유사성과 질적인 차이
30년 전의 TV에 대한 집착이 이제는 스마트폰 속 소셜미디어로 옮겨갔다. 오늘날 소셜미디어 집착의 핵심 기저에도 동일한 심리가 깔려 있지만, 과거의 TV보다 훨씬 강력한 소외에 대한 공포(FOMO)를 소셜미디어는 자극한다.
과거에는 어제 본 드라마나 뉴스가 다음날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대화 주제였다. TV를 안보면 대화에 낄 수 없다는 소외감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현재의 소셜미디어에서는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내가 그 현장에 있었는지, 내 게시물에 누가 반응했는지 등 쌍방향 소통이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소외의 범위가 '대화 주제'에서 '인간관계 자체'로 확장된 것이다. 그것도 24시간 실시간이 적용된다.
내가 잠든 사이, 혹은 일을 하는 사이에 "나만 빼고 재미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훨씬 더 촘촘하고 강력하게 작동한다. 결국 과거의 막연한 불안감이 오늘날에는 기술 발전과 함께 더욱 정교하고 자극적인 형태의 중독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중독은 뇌질환
소셜미디어 중독은 통제가 어려운 접속욕구에 의해 소셜미디어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셜미디어에 쏟아 자신이나 타인의 다른 중요한 삶의 영역에 지장을 주는 행동중독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가 강력한 중독성을 띠는 이유는 뇌의 보상체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는 도박(슬롯머신)과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인간의 뇌는 예측 불가능한 보상을 받으면, 더 많은 도파민을 분출하는데 소셜미디어는 화면을 당겨 새로고침을 할 때, 어떤 재미있는 게시물이나 ‘좋아요’가 나타나는지 알수 없게 한다.
한편 ‘좋아요’와 댓글은 우리 뇌에 ”너는 가치있는 사람이야“라는 신호를 즉각적으로 보내며 쾌락중추를 자극한다. 그런데 소위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모델은 ‘중독 경제’모델의 다른 이름이다. 사용자가 앱에 머무는 시간이 곧 수익이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을 활용해 앱을 설계한다.
무한 스크롤을 통해 콘텐츠의 끝이 없게 만들어 사용자가 ‘그만 봐야지’라고 결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는 카지노에는 창문이나 시계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용자의 취향을 완벽히 분석해 좋아 할만한 영상만을 계속 보여주므로 스스로 앱을 종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단순히 많은 시간 사용하는 습관을 중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뇌질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정신건강정보포탈에 의하면, 중독(addiction)은 독성에 의한 중독(poisoning)과 구분하여 ‘장기간 사용하여 그것이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현대 의학으로 밝혀진 바로는 물질 중독이든 행위 중독이든 중독질환은 ‘보상계(reward system)*라고 하는 뇌의 특정부위에 문제가 생김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보상계는 중격의지핵(nucleus accumbens)을 중심으로앞쪽으로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뒤쪽으로는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로 이어진 뇌구조물로서 쉽게 말하자면,쾌감,안정감,다행감과 같은 모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해주는 도파인, 엔도르핀과 같은 뇌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쾌락중추이다.(한국정신건강정보포탈)
한편 중독을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물질이나 행동을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스탠포드대 의대 중독 의학정신과 의사인 애나 렘키박사는 LA에서 진행된 획기적인 소셜미디어 피해재판에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중독성이 강한 이유는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에게 ”24시간 내내 무한하고 마찰없는 접근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중독의 무게
그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중독에 해당될까? 미시간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약 2억1천만명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소셜미디어 사용자중 약 4.69%가 중독 수준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대체로 미국에서는 약 5%~10%가 소셜미디어 중독이라고 추정하는데 가장 적게 추정한 2024년의 USC연구에서는 2% 정도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10%라고 하면, 3300만명이 넘는 것이고, 2%도 660만명이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전체적인 규모도 규모이지만 연령대별 중독을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스태티스타에 의하면, 자기보고(self-reporting) 소셜미디어 중독자 비율이 18세에서 22세의 경우는 40%가, 23세에서 38세의 경우는 37%가, 38세에서 54세의 경우는 26%가, 55세에서 64세에서는 21%가 자신이 소셜미디어 중독이라고 보고하였다.
물론 이 수치는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니 실제 다 중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연령대가 예외가 아니고, 젊은 층이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소셜미디어 및 스마트폰 과의존위험군은 약 20%이상으로 조사되었다. 과거에는 게임중심으로 중독이 많았으나 2023년 이후에는 숏폼비디오(유튜브 쇼츠,틱톡 등) 시청에 의한 중독적 사용이 가장 높게 보고된다.
아동을 소셜미디어 중독위험에서 해방하라
연령이 낮을수록 소셜미디어 중독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 등장 이후에 태어난 16세미만은 태어나자마자 접한 것이 소셜미디어환경이다.
이미 의학계는 소셜미디어가 어린이의 전두엽 발달을 저해하고 물리적인 뇌구조를 바꿀수 있다는 점을 강력히 경고해오고 있다. 미국 소아과학회(AAP,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는 최근 "어린이의 뇌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연령 제한과 법적 규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AAP는 13세 미만은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발달 중이라서 보상(좋아요, 알림)에만 민감한 뇌 상태이다. 이 시기의 노출이 '평생 가는 중독 회로'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 차원에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단순히 약관에 13세를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연령 인증 시스템'을 법적으로 강제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중독성 알고리즘(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의학적으로 "아이들에게 중독성이 검증된 약물을 노출하는 것과 같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AAP는 최근 미국에서 발의된 '어린이 온라인 안전법(KOSA)'제정에 전폭 지지한다.
어린이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규제하라
이미 여러 국가에서 온라인안전법을 도입하거나 추진중이다. 호주 등 선진 10여개국은 아예 온라인 환경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16세미만에게 소셜미디어계정을 금지하는 법률도 만들어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는 지난 10여년간 척도와 기준이 다양하게 연구되어 왔으나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빅테크의 저항으로 실질적인 대응 입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였다. 특히 어린이를 소셜미디어 중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안전한 온라인 환경법률들은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가운데 사법적으로 대규모 소송으로 이를 해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입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사법이라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이 과정은 지나치게 시간이 지체되는 단점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 상황, AI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사법에 의존하여 질서를 잡을 수 없다. 20년간 방치되어온 플랫폼에 대한 규제체계는 AI시대로 접어들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주권은 지켜져야 한다.
정책정책 수혜자가 되어야 할 어린이를 금지하는 법률이 아니라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률이 타당하고 바람직하다. 문제를 야기하는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은 더 이상 방치할 일이 아니다.
가정의 달에 소셜미디어 환경에 포로가 된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보자.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스몰 테크의 로비에 포획된 입법부는 쉰소리만 내고 소식이 없다. 우리의 사법은 미국의 사법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컬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국진 전 미디어미래연구소장<사진>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17년) 출신으로 미디어미래연구소를 설립해 21년간 운영했다. 지금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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