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쿠팡]
[디지털데일리 왕진화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2026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발표하면서 쿠팡의 ‘동일인’을 기존 법인에서 창업자 김범석 의장으로 변경했다.
2021년 대기업집단 지정 이후 유지돼 온 ‘법인 동일인’ 체제가 깨지면서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는 모습이다.
공정위는 29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 102개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쿠팡이 ‘법인 동일인’ 예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상 법인을 동일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총수 일가의 경영 참여가 없어야 하는 등 사익편취 우려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공정위는 김 의장의 친족이 계열사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봤다. 특히 동생 김유석 씨가 부사장(VP)급으로 사실상 최상위 경영진에 해당하는 지위에서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김 씨는 물류·배송 정책 관련 정기·수시 회의를 수백 차례 주도하고,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을 소집해 물량 확대와 배송 정책 변경 등 핵심 현안을 논의해왔다. 공정위는 이를 단순 실무 참여를 넘어 ‘사실상 경영 관여’ 수준으로 판단했다.
결국 공정위는 시행령 규정에 따라 쿠팡의 동일인을 자연인인 김 의장으로 변경 지정했다.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주체와 법적 책임 주체를 일치시키겠다는 취지다. 최장관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동일인이 법인에서 자연인으로 변경될 경우의 영향에 대해 가장 큰 변화는 해외 계열사 관련 공시라고 설명했다.
최 국장은 “김범석 의장처럼 동일인이 자연인일 경우, 해당 인물이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해외 계열사 현황을 별도로 공시해야 한다”며 “또 해외 계열사가 국내 계열사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 그 해외 계열사의 동일인 지분 보유 현황 역시 공개 대상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외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며, 실질적으로는 해외 계열사 공시 범위가 확대되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 소재 쿠팡 캠프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변화는 그간 이어져 온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앞서 쿠팡은 2021년 대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된 이후 줄곧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돼 왔다. 김범석 의장이 외국 국적이라는 점과 함께, 자연인 지정 예외 요건을 충족한다는 판단이 반영된 조치였다.
정부는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하기 위해 ▲자연인과 비교해 국내 계열회사 범위가 동일할 것 ▲친족의 출자·경영 참여가 없을 것 ▲자연인 및 친족과 계열사 간 채무보증·자금대차가 없을 것 등의 요건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변경할 수 있다.
그간 업계에서는 쿠팡Inc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 발표 때마다 논란이 반복돼 왔다.
특히 지난해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 씨의 급여 수령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커졌다.
동일인이 자연인으로 바뀌면서 쿠팡은 총수 일가에 대한 공시 및 사익편취 규제 적용이 보다 명확해질 전망이다. 공정위는 향후에도 동일인 지정 제도를 엄격하게 운용해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쿠팡은 이번 조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회사 측은 김유석 씨가 국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등기임원도 아닌 만큼, 다른 대기업집단과 달리 총수 일가의 출자나 우회 지배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의무를 이미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규제를 받게 되는 ‘이중 규제’ 소지가 있고, 에쓰오일 등 다른 외국계 기업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최 국장은 “시행령 요건과 판단 지침에 따른 정당한 법 집행”이라며 “미국 측에서 문제를 제기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중규제 논란에 대해서도 “미국 증권거래소 공시는 투자자 보호 목적이고, 공정위 규제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점에서 목적이 서로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일부 회사·재무 현황 등 공시 항목이 겹치는 부분은 있지만, 쿠팡 입장에서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최 국장은 해외 사례와의 비교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사우디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으로, 특정 개인의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빈 살만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구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GM 역시 사모펀드 등을 포함한 분산된 지분 구조를 갖고 있어,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특정 자연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점에서 쿠팡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쿠팡은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치권이 자국 기업에 대한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통상·외교 이슈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들이 강경화 주미대사를 상대로 쿠팡 관련 조치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 여부나 투자자 보호 규정과의 충돌 가능성, 나아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외국 자본 유치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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