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송근섭 ACAMS 한국대표,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
- FinCEN의 AML 감독 개정안의 정책적 목표는 “성과 중심”
- 국내 AML 제재 행정의 법적 리스크와 징벌적 행정 개선 필요성
- AML 리스크 평가 중심 감독모델로의 구조적 전환 기회
- 회복력 있는 AML 생태계 구축을 위한 민관 협동 거버넌스 필요
최근 미국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이 발표한 자금세탁방지(AML) 프로그램 개정안(NPRM)은 FATF의 제5차 상호평가 방법론과 함께 글로벌 자금세탁방지 및 금융범죄예방을 위한 규제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상자산 사업자(VASP)인 한빗코와 두나무(업비트)에 대한 금융정보분석원(KoFIU)의 제재 처분이 법원에서 연이어 취소되거나 효력이 정지되며 감독 행정의 정당성이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의 선진 규제 모델과 국내의 규제 집행 갈등 사례는 한국형 리스크 기반 접근법(RBA)을 재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준거 틀을 제공한다.
FinCEN 개정안: "체크리스트가 아닌 성과에 집중하라"
미국 FinCEN이 제안한 AML 감독 프로그램 개정안의 핵심은 금융기관이 규제 당국이 정해준 항목을 단순히 체크하는 수준을 넘어, ‘효과적이고 실질적인(Effective, Risk-based, and Prudent)’ 프로그램을 구축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리스크 평가의 의무화: 모든 금융기관은 자신의 비즈니스 상품과 서비스 모델, 고객군, 지리적(Geographic) 요인을 반영한 독자적인 ‘리스크 평가 프로세스’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이는 표준화된 컴플라이언스 기준의 기계적 적용이 아닌, 금융기관이 스스로 자산과 거래의 위험도를 능동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상응하는 맞춤형 대응 체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 우선순위의 내재화: FinCEN이 발표하는 ‘국가 AML/CFT 전략적 우선순위’를 금융기관의 AML/AFC 프로그램에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즉, 국가적 금융범죄 위협의 우선순위와 개별 금융기관의 업무 대응 우선순위를 동기화하라는 의미다.
고가치 정보(High-value) 생산: STR 보고 건수라는 양적 지표가 아니라, 실제 수사기관이 범죄를 소탕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는지가 금융기관 AML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한국의 현실: ‘모호한 기준’과 ‘징벌적 행정’의 충돌 : 미국 FinCEN의 개정 방향이 실질적 위험 관리 강화에 방점을 두는 것과 대조적으로, 국내 감독 당국은 최근 일련의 행정소송 패소로 인해 제재 기준의 명확성 확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현행 AML 감독 체계의 집행 방식에 대한 제도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임을 의미한다.
한빗코 사건: "예측 가능성 없는 과잉 제재의 경고"
법원은 한빗코에 부과된 20억 원 규모의 과태료를 취소하며, 위반 행위의 경중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례의 원칙’ 위반을 지적했다. 특히, 규정이 모호한 상황에서 당국의 사후적인 잣대로 사업자를 몰아세우는 것은 법치 행정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린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두나무(업비트) 사건: "절차적 미비가 곧 실질적 실패는 아니다"
법원은 고객확인(CDD) 과정에서의 일부 미비점을 이유로 내린 제재에 제동을 걸었다. 사업자가 AML 이행을 위한 전산 시스템과 조직을 갖추고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개별적인 운영상의 실수를 근거로 곧바로 ‘신고 의무 위반’이라는 중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결국 사법부는 형식적 요건의 충족 여부에 매몰되기보다, 사업자가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기울인 실질적인 노력과 그 체계의 적정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법리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형 AML 감독 체계 개선 방안
미국 FinCEN의 개혁 방향과 우리 법원의 판결 등을 종합해 볼 때, KoFIU와 금융 감독당국은 다음과 같은 AML/AFC 감독 체계 개선이 요구된다.
첫째, '규제 준수'에서 '위험 관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단순히 규정을 위반했는지를 따지는 포지티브 방식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금융관련 사업자가 스스로 리스크를 평가하고 대응하는 역량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FinCEN처럼 '리스크 평가 프로세스' 자체를 평가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민관 협력을 통한 ‘동적 가이드라인’의 구축이다. 디지털금융과 가상자산 등 금융 신산업은 법보다 기술이 선행한다. 감독당국은 일방적인 지시자가 아닌 파트너로서 업계와 소통하며 구체적인 사례 중심(Case-study)의 가이드라인을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측 가능한 규제'가 가능해진다.
셋째, ‘양적 보고’가 아닌 ‘질적 정보’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다. 단순한 STR(의심거래보고) 건수 채우기나 Sanction List D/B 수록 숫자 비교식의 감독 행정은 사회적 비용만 발생시킨다.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한 금융기관에는 검사 완화나 제재 감경 등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민간의 역량이 실제 범죄 차단에 집중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금세탁방지(AML) 규제 체계는 금융 시스템의 무결성과 대외 신뢰도를 담보하는 핵심 기제로서 작동해야 하며, 금융 통제를 위한 사업자 규제나 사법적 제재 수단으로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 FinCEN이 이번 입법예고안(NPRM)을 통해 제시한 감독의 방향성과 같이, 이제는 형식적 요건 중심의 감독에서 벗어나 리스크 기반의 실효적 성과(Effectiveness)를 도출하는 데 당국의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 금융감독 당국 또한 최근의 사법부 판단들을 AML 감독 제도 개선의 동력으로 삼아, 국제 규준에 부합하면서도 국내 금융 환경에 최적화된 '회복력 있는 AML 생태계'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 본 컬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 송근섭 ACAMS 한국대표
한국자금세탁방지학회 회장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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