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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해외로, 삼양은 내수로…엇갈린 K-라면 주도권 전쟁

(왼쪽부터) 농심 '신라면 김치볶음면', 삼양식품 '삼양1963'. [ⓒ각 사]

[디지털데일리 최규리기자] 국내 라면 시장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체된 내수 수요와 고정비 부담, 수출 비중 증가라는 구조적 변화에 국내 라면업계 양강 체제인 농심과 삼양식품이 각기 다른 해법을 꺼내 들었다. 농심은 내수 시장 1위라는 기존 경쟁력으로 글로벌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삼양식품은 해외에서 확보한 실탄으로 국내 시장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두 기업의 상반된 행보는 라면 시장 판도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농심, 수익성 개선 해법…'글로벌 라인업'에서 찾는다 = 농심의 전략적 고민은 실적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해 농심의 연결 기준 매출은 3조4387억원으로 전년 대비 0.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630억원으로 23.1% 감소했고 영업이익률도 4.7%에 그쳤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1576억원으로 8.1% 줄었다. 매출 증가 대비 이익 감소가 심화된 구조는 내수 시장 정체와 함께 원재료 가격 상승, 글로벌 사업 비중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은 약 40% 수준으로 외형은 키웠으나 수익성은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농심은 글로벌 시장 확대에 집중하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월마트 약 1000개 매장에 신제품을 입점시켰고 유럽법인을 신설해 현지 유통망과 영업채널을 강화했다. 수출 전용 공장인 부산 녹산공장도 증설에 들어갔다. 완공되면 연간 수출 전용 라면 생산능력이 7억개에서 12억 개로 약 70% 증가한다.

농심은 글로벌 소비자 맞춤형 제품도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말 글로벌 시장 출시를 앞두고 있는 '신라면 김치볶음면'이 대표적 사례다. 이 제품은 단맛과 매운맛을 조합한 '스와이시' 트렌드를 반영해 외국인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한 콘텐츠 협업을으로 브랜드의 문화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협업한 한정판 '신라면 스페셜 패키지'는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농심의 글로벌 브랜드 자산을 문화 콘텐츠와 연결하는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올해 농심이 공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따르면 회사는 오는 2030년까지 매출 7조3000억원, 영업이익률 10%, 해외 매출 비중 61% 달성을 목표로 한다. 현재의 4.7% 영업이익률과 약 40% 해외 매출 비중을 감안하면 공격적인 목표로 보이기도 한다.

◆ 삼양식품, '불닭'으로 벌어들인 자본브랜드 신뢰 회복 나서 = 삼양식품은 구조적으로 농심과 반대 전략을 택했다. 지난해 삼양식품의 전체 매출 1조729억원 중 77%인 1조3359억원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대표 제품인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유튜브 챌린지 열풍을 타고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삼양은 이를 통해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시가총액 10조원을 돌파했다.

다만 내수 시장에서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 국내 매출은 3921억원으로 전체의 23%에 불과했으며 브랜드 신뢰도 회복과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과제로 지적돼 왔다. 실제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 같은 구조가 장기적인 기업가치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수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에 삼양식품은 지난 3일 '삼양1963'을 출시하며 내수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89년 '우지 파동' 이후 36년 만에 동물성 지방인 우지를 다시 도입한 제품이다. 과거 삼양라면의 정통성과 고소한 풍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제품 구성도 국내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리미엄에 초점을 맞췄다. 골든블렌드 오일로 튀긴 면, 사골베이스 국물, 큼직한 동결건조 채소 후레이크 등 고급화된 구성을 도입했다. 이는 내수 시장의 저가 일변도 흐름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가치를 제안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삼양식품 측은 "우지는 삼양라면의 진심이자 정직의 상징"이라며 "'삼양1963'은 브랜드 복원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삼양식품의 재무 실적은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3442억원으로 전년 대비 133% 증가했으며 순이익도 2722억원으로 115% 늘어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 같은 성과가 불닭 단일 브랜드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라는 점에서 구조적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다.

'저평가 가치주' vs '고성장 프리미엄' = 시장에서도 두 기업은 상반된 포지셔닝에 있다.

11월 4일 기준 농심 주가는 44만3000원이며 PER(주가수익비율)은 17.98배,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96배다. 이익 대비 주가와 자산 대비 주가 모두 낮은 수준으로 수익성과 성장 기대가 크지 않다는 시장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다. 현재 농심은 전반적으로 저평가된 상태로 거래되고 있다.

반면 삼양식품은 주가 138만1000원, PER 32.65배, PBR 10.46배로 이익과 자산에 비해 주가가 높게 형성돼 있다. 이는 시장이 삼양식품의 성장성, 브랜드 파워, 글로벌 확장 가능성에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높은 밸류에이션은 부담 요인으로도 지적된다. 삼양식품이 고성장 종목으로 기관의 관심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닭 시리즈 외 신규 제품이 얼마나 빠르게 수익에 기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에 비해 농심은 글로벌화에 따른 체질 개선이 가시화될 경우 리레이팅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현지 소비자 맞춤형 제품 전략과 유통망 확장이 본격적인 성과로 이어질 경우 주가 반등 여지도 크다는 분석이다.

라면 시장은 브랜드력과 글로벌 채널에 따라 수익 구조가 달라질 수 있는 시장이다. 농심은 글로벌 확장을 통해 정체된 수익성을 끌어올리려 하고 삼양식품은 브랜드 복원을 통해 내수 존재감을 회복하려 한다. 양사는 공통적으로 기존 모델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전환 국면에 진입해 있다. 두 기업의 전략 전환이 시장 구조에 미칠 영향은 중장기 실적과 반응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은 브랜드 인지도로 가고 내수는 신뢰도로 간다. 농심은 유통력과 글로벌 라인업으로 삼양은 브랜드 리빌딩으로 가치를 재정의하는 중"이라며 "지금의 전략 전환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중장기 경영 방향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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