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의 압박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오던 식품업체들은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의 혼란기에 제품 가격을 줄줄이 올렸다. 동서식품은 국내 믹스커피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한 맥심 모카골드 가격을 9% 올렸다. 롯데웰푸드도 8개월 새 과자와 아이스크림 가격을 두 차례 인상하면서 빼빼로 2000원 시대를 열었다. 농심도 라면과 스낵에 이어 스프 가격도 인상했다.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최규리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라면값과 계란값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고 되물으며 물가 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지만, 현장의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다. 가격 인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놀라기 전, 이미 소비자들은 몇 달 전부터 가격표 앞에서 놀라고 있었다.
실제 농심은 지난 3월 '신라면', '짜파게티' 등 주요 제품 17종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했다. 신라면 봉지면 가격은 950원에서 1000원으로, 짜파게티는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올랐으며, 용기면 제품도 1500~2000원대에 형성돼 있다. 오뚜기 역시 4월 '진라면' 등 16개 품목 가격을 평균 7.5% 인상했다. 진라면 봉지면은 716원에서 790원으로, 용기면은 1100원에서 1200원으로 각각 올랐고, 팔도도 '팔도비빔면'을 비롯한 라면 제품의 가격을 4.5%에서 7.1% 수준으로 인상했다.
또한 일부 컵라면 제품 가격은 2000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하림의 '더미식 오징어라면'은 2200원, 농심의 '김치짜구리큰사발면'과 '마라샹구리큰사발면'은 각각 1980원, 오뚜기의 '유부우동 용기' 역시 1980원으로, 모두 2000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식품업계 전반으로 보면 최근 6개월간 60여 개 업체가 가격을 올렸으며, 통계청 기준 가공식품 74개 품목 중 53개가 가격 상승을 기록했다.
계란값도 예외는 아니다. 계란 30구는 7000원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했고, 외식 물가도 3.2%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 초반에 그쳤다는 점에서 식탁 물가의 이탈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프랜차이즈 치킨 한 마리는 배달비를 포함하면 3만원을 넘어서는 경우도 흔하다.
이제 치킨, 라면, 계란은 더 이상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이들 품목을 장바구니에 담기 전 가격을 한 번 더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급등세가 일시적이거나 특정 품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라면, 계란, 치킨 등 서민 식생활의 대표 품목들에서 동시에 가격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가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의 신호에 가깝다.
계란값 상승은 생산 기반의 불안정성과 직결된다. 산란계 농장에서 조류 호흡기 질병이 확산되며 산란율이 크게 떨어졌고, 고병원성 AI로 인한 대규모 살처분도 공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사육환경 기준 강화로 밀집 사육이 어려워졌고, 병아리 입식 주기마저 늦춰졌다. 이 같은 요소들이 중첩되면서 공급은 줄어들고, 반면 소비는 오히려 불황형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라면의 경우도 원재료 가격과 물류비 상승 등의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상 주요 업체들의 연쇄적 인상 행태가 가격 불안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대선 직전 국정 혼란 속에서 주요 식품업체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린 것도 눈에 띈다. 업체별로는 원가 인상을 이유로 들었지만, '지금이 인상 타이밍'이라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퍼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부 대응은 이 흐름을 막지 못했다. 물가 안정 의지를 강조했지만, 실질적인 대응 전략은 부족했고,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는 발언만 반복됐다. 이 대통령이 "라면이 2000원이냐"고 묻는 장면은 현실 인식과 대응 간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 발언 이후에도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물가 안정 조치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뒤늦은 현실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비상경제 TF 회의는 반복되고 있지만, 가격 통제에 가까운 발언이나 일회성 경고만으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정치적 신호'로 받아들이며 일시적으로 눈치를 볼 수 있지만,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는 반복되고 있으나, 일회성 경고나 회의체 운영만으로는 실효성이 없다. 유통 구조 개선, 사료·원재료 수급 다변화, 기업과의 협조 체계 등 실질적인 물가 안정 대책이 요구된다.
서민음식의 몰락은 통계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곧 서민 생활의 마지막 방어선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단기간에 가격을 되돌리긴 어렵더라도, 정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하고 가능한 정책 조합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유통 구조 개선, 사료 및 원자재 수급 다변화, 기업의 협조를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
이제는 경고보다 해법이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 앞에 물가 대응 전략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서민음식의 몰락은 정책 신뢰와 시장 질서, 소비자 심리가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적 징후다. 정부는 물가 대응의 틀을 전면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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