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예형’까지…왜 1800년전 삼국지는 디지털시대에도 통할까

박기록 기자 2020.10.17 13:43:50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며칠전 '예형'(禰衡)이란 인물이 느닷없이 미디어에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소설 삼국지 초반에 잠깐 나왔다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그 독설가. 

박진영 더블어민주당 부대변인이 최근 진중권 씨를 ‘예형’에 빗대어 비판한 것이 포털 검색어에 오르면서 크게 회자됐다. 

‘예형’이란 인물은 삼국지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실 생소한 이름이다. 삼국지의 중요한 스토리 전개에 있어 그의 역할과 존재감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대략 삼국지의 큰 줄기를 이루는 스토리를 시간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조조가 원소를 제압하고 화북지역을 완전히 장악해 마침내 최고 실력자로 떠오른 관도(官途)대전, 남하하는 조조에 맞서 손권-유비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써 마침내 위․촉․오 삼국 정립이 이뤄지는 적벽(赤壁)대전이 전반부다.

이어 형주를 탈환하지 않고서는 통일의 대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유비가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으나 오히려 오의 육손에게 궤멸당하고 백제성에서 최후를 맞는 이릉(夷陵)전투, 제갈공명이 출사표쓰고 한(漢)황실의 부흥을 위해 북벌에 나섰으나 마속(馬謖)의 어이없는 실수로 그 꿈이 좌절돼버린 가정(街亭)전투, 그리고 제갈공명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는 오장원 전투가 대략 후반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얽혀있는 수많은 곁가지 에피소드들과 수백명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삼국지가 전개되던 당시대의 인물인 진수(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와 그로부터 약 1100년 뒤 명나라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 연의(演義)'는 많은 차이가 난다. 유명한 '도원결의'부터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는 역사적 허구다. 

하지만 삼국지가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면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그것을 진지하게 따져야 할 실익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삼국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주요 인물들을 우리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시간적 배경은 서기 180년~260년 사이다. 후한이 망하면서 위․촉․오 3국이 정립됐다가 결국 위(魏)의 권신인 사마중달(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세운 진(晉)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 불과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안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삼국지는 까마득한 1800년의 시간적 간극을 넘어 지금까지도 강력한 컨텐츠의 보고가 됐을까. 

◆게임으로 삼국지에 입문하는 아이들, 그래서 나타난 현상들 

‘예형’이란 사소한 인물마저 소환됐듯 현대의 정치, 산업, 인간관계와 처세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상황에서 삼국지가 자주 인용되고 있다. 특히 게임산업에서 삼국지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고전이며, 여전히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중장년층은 소설과 만화로 삼국지에 입문했지만 요즘 젊은층들은 게임을 통해서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관우, 장비, 조자룡, 여포, 조인, 하후돈, 주유, 여몽, 태사자 등 삼국지속의 주요 등장 인물들은 게임속 능력치와 레벨로 먼저 인식된다. 

실제로 "삼국지를 책으로 먼저 읽었다면 금새 지겨웠을텐데 게임을 섭렵하고 난 후 소설을 읽었을 때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 적지않다. 

자세한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젊은 층들이 기성 세대들보다 삼국지의 등장 인물들을 더 많이, 더자세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아마도 게임을 통한 깊은 몰입의 긍정적인 결과로 추정된다.   

그렇다보니 역사에 있어 가정은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마치 게임처럼 삼국지의 역사를 재구성하면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들면 '관우가 패배하지않고 형주를 끝까지 사수했더라면', '만약 제갈량이 마속이 아니라 야전 경험이 풍부한 위연에게 가정 수비를 맡겼더라면', '제갈량이 유선을 폐하고 본인이 직접 촉의 황제로 등극했더라면', '은밀하게 손잡은 강유와 종회가 살해되지 않고 군사를 돌려 위의 수도 허창으로 쳐들어갔더라면' 등의 가정이 그것이다. 
  
한편으론, 소설 삼국지의 뛰어넘어 역사적 사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철저히 검증하는 재야의 고수들도 많다. 실제로 유투브에선 다양한 삼국지 컨텐츠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1800년이 지난 디지털 시대에도 삼국지는 여전히 핫 아이템이다. 

◆역사적 사실과 재해석, 화수분처럼 샘솟는 컨텐츠… 삼국지의 위력  

이러한 경험은 삼국지에 대한 '익숙함'을 낳고, 이는 게임업계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컨텐츠를 만드는 동력과 배경이 된다.  

중국의 4대 기서는 삼국지 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가 꼽힌다. 이중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실은 ‘삼국지 연의’뿐이다. 특히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현실감과 몰입감, 감정이입 등 정서적 교감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스토리의 전개도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이다. 특히 국가간 힘의 균형을 맞추기위해 왕의 책사들간에 펼쳐지는 지략대결도 흥미진진하다.  

삼국지보다 약 400년 앞서,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겨루는 초(楚)-한(漢) 쟁패가 조금도 여유를 허락하지않는 1대1 맞대결의 구도라면 삼국지의 다자 구도는 지금과 비교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역동적이다.  
◆삼국지 과몰입에 대한 우려... 일각에선 ‘중국 환타지' 경계도 

삼국지가 여전히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최근 ‘예형’의 소환사례에서 보듯 삼국지를 통해 시대를 불문하고 여러 방향에서 시대상을 적절하게 투영한다고 보기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삼국지의 과도한 몰입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대적 배경상 어쩔 수 없이 삼국지에선 ‘인권’이나 '민주주주의적 가치' 등 현대에 필수적인 가치들은 추출할 수 없더라도 사회주의 국가인 지금의 중국과 정서적으로 혼동하는 것에 대한 경계다.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의 대중 관계, 또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비즈니스 전략 등 중국을 냉철한 시각으로 판단하는데 있어 소설 삼국지만으로 마치 중국을 다 이해하는 듯한 단선적인 사고는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십수년간 우리 나라가 K팝과 한류 드라마로 국가 이미지 개선과 함께 경제적인 효과도 톡톡히 누렸던 것과 같이 중국도 삼국지의 유산을 이용해 국가적 이미지의 개선을 시도할 것이란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 영화 '뮬란'이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아직까지 삼국지 게임속에 알게모르게 투영된 중화 패권주의를 분석해보려고 국내에서 시도된 적은 없다.   

시대를 초월한 삼국지 열풍과는 별개로, 지난 30년간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패권주의 국가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는 지금의 중국을 바로 인식하자는 지적은 새겨들을만하다.  

<박기록 기자>rock@dd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