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라이트닷넷] ‘IT 덕분에 이젠 사람 필요없다’는 독설의 섬뜩함

박기록 기자 2019.01.11 15:10:49


[디지털데일리 IT전문 미디어블로그=딜라이트닷넷]

KB국민은행이 지난 8일 하룻동안 파업을 했다. 19년만의 파업이란 점에서 관심이 높았다.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그 후폭풍의 범위가 더 커졌다. 괜찮은 직장이라고 생각되는 회사의 노조 파업때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일부 보수 언론들의 '고연봉 프레임'은 물론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고액 연봉을 받는 국민은행 노조가 파업을 하는게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국민 정서만 자극하는 부실한 논리다. 사실 논리라기 보다는 그냥 남들보다 많이 받는데 왜 파업을 하느냐는 핀잔에 가깝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7년 순이익 규모가 3조원을 넘었다. 국내 은행중 최고 수익을 올렸다. 기업이 성과를 내면 직원들과 성과를 공유하자는 요구가 과연 비난받을 일인지 의문이다. 과거 삼성전자, 구글, 애플이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에 찬사를 보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몇년전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과거 지하철 노조의 파업때 '고연봉 프레임' 으로 노조를 제압한 이후, 이제는 거의 파업때마다 연봉 공개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듯 하다. 물론 높게(?) 책정된 평균 연봉의 정체도 따지고 들어가보면 있는 거 없는 거 다 합산시킨 것이라는 노조의 반박에 면박을 받기 일쑤다. 

◆'IT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의 불편함 = 이번 국민은행 노조 파업의 후폭풍에서 가장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마도 IT의 역할이 생각지 않게 많이 거론됐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뱅킹, 모바일 등 비대면채널때문에 노조가 파업을해도 불편이 없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언론들이 적지않았다. 여기에는 ' IT 때문에 더 이상 사람(직원)이 필요없어졌고, 오히려 노조가 파업으로 더 잃은게 많다'는 냉소가 깔려있다.

과연 그럴까. 

파업 당일 국민은행은 전국 1058개 점포중 411개 거점 점포에서는 모두 정상 영업을 했고, 나머지 점포도 5~6명이 자리를 지켜 고객을 응대했다. 평소에도 한적한 오프라인 객장을 생각해본다면 이날도 국민은행은 사실상 평상시처럼 정상 영업을 한 셈이다. 

이번 노조 파업을 보면서 "IT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지나친 IT 만능주의적 발상이다.   

사실 '파업'과 '고객불편'은 서로 인과관계가 거의 없다. 이미 국민은행의 비대면채널(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ATM 등) 처리 비중은 파업 훨씬 이전부터 90%가 넘어선 상태다. 다른 시중 은행들도 거의 엇비슷하다.

바꿔 말하면, 이제 전체 거래중 10%도 안되는 거래가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폄하되는 오프라인의 가치 = 우려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난 숫자만 보고  '10% 미만의 오프라인 프로세스(채널)'의 위력(?)을 너무 간과하는 데 있다. 

사실 은행 수익의 대부분인 VIP응대, 또 아직 비대면채널로는 여전히 기술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업무, 그리고 오프라인이 아니면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여신관리의 영역들이 이 10% 미만에 모두 숨어있다. 

비대면채널 비중이 90%이고 대면채널(오프라인) 비중이 10%라고해서, 그 중요성까지 9대1 등가로 놓는 것은 오프라인의 가치를 지나치게 호도하는 것이고, 일선 직원들의 노고를 폄훼하는 것이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여신(대출)부문에서 시중 은행들과 아직 경쟁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이유. 그리고 한국씨티은행 등 국내 지점이 거의 없어진 외국계 은행들이 일반 시중 은행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실적이 쪼그라든 요인도 결국은 이 '10%의 힘'에서 크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지난 수년간 비수익 업무의 비중을 비대면채널로 전환하려 노력해왔다. 이제 양적으로는 비대면채널의 비중이 거의 은행들이 설정한 목표점에 도달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점차 비대면채널의 질적 진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단계다.인공지능(AI)기술의 발달,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 등 혁신적인 기술이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사람밖에 할 수 없었던 업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계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은 여전히 끝없이 존재한다.  

◆너무 빨리온 디지털 시대, 사람의 가치를 찾는 것이 숙제 = 한국은행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가 발간한 '2017년 금융정보화 현황'에 따르면, 조사대상 국내 152개 금융기관의 임직원수는 22만8413명이다. 전년대비 1.8%의 감소다. 금융권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인력들이 수혈되기때문에 전체 숫자에는 급격한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비대면채널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현실에선 국내 금융권의 임직원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고 인식할 수 있다. 현재 국내 금융권의 임직원의 숫자가 적정한지 여부는 사실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다만 분명한 것은 'IT가 이제 일을 다 하기때문에 사람이 필요없다'는 식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금융권 뿐만 아니라 거의 국내 대부분의 산업에서 디지털화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 

넓게 보면, 각 산업군마다 디지털화에 따른 '사람의 역할과 가치'가 재정립되고 있는 시기다. 국민은행 노조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막상 되돌아보면 자신이 속한 산업군도 거의 IT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정도의 차이, 속도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지난해 국내 한 대형 은행은 콜센터 업무에 인공지능IAI) 도우미를 적용했다. 콜센터 직원 1명의 업무를 인공지능 도우미가 상당 부분 도와줌으로써 콜센터 인력의 업무 부담을 줄여줬다. 자연스럽게 콜센터 인력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이 은행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기존 콜센터 인력은 앞으로 더 부가가치가 높은 일에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이다. 이 콜센터 직원은 이 은행 소속이 아닌 외주업체 직원이다. 잉여가 생긴 콜센터 인력을 보다 더 가치있는 일에 투입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외주업체가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아마도 외주업체 입장에선 그 직원들이 퇴사해주는 것 만큼 더 부가가치 높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지금까지 나타난 금융산업의 디지털라이제이션 과정에서 '사람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부분에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IT혁신 못지않게 더 부가기치 있는 일에 기존 인력들을 투입하려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다. 하지만 과연 국내 금융권에서 사람(직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IT때문에 고객 불편이 없어졌다'며 냉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그래서 불편하다.  IT를 통한 혁신이 단순히 사람을 줄이는 데 있다면 그건 너무나 공허한 결말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다시 묻게된다.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면 IT는 왜 존재하는가.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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