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방식 효율성 논란…금융권, 차세대사업 발주 관행 멈출까

이상일 기자 2018.03.07 09:58:41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금융권의 대형 차세대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최근 우리은행의 차세대시스템 오픈이 한차례 연기되면서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빅뱅'식으로 진행되는 금융권의 대형 차세대사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차세대시스템 구축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KB국민은행이 예정대로 사업에 나선다면 이 사업이 마지막 대형 차세대시스템 사업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기존 '빅뱅' 방식을 대체하거나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론이 제시되지는 못하는 단계다. 이제 빅뱅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보자는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단점이 더 심화되는 빅뱅방식 =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 사업은 자체적으로도 장시간, 대규모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만큼 시스템 오픈 일정 연기 등은 꾸준히 반복돼온 문제다. 

하지만 최근 차세대시스템에 대한 업계의 고민은 이전과는 결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거에 시스템을 혁신하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빅뱅’ 방식의 차세대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금융권에선 디지털 금융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금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IT부서는 물론 전행의 디지털 거버넌스가 올바르게 작동해야 한다. 특정 부서만의 디지털 혁신이 아니라 전행적인 차원에서 디지털 금융을 위한 방향성이 정립되고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차세대시스템 역시 전행 차원의 공조가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이 문제다. 현재 금융사들의 초점이 디지털 혁신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혁신과 차세대시스템은 절묘한 균형의 추를 맞춰가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금융사 내부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스마트 금융이 경영진의 화두가 되면서 디지털 전략 수립과 실행 조직에 힘이 많이 쏠린 상황”이라며 “IT부서 차원에서 추진되는 차세대시스템에 경영진의 힘이 상대적으로 덜 집중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차세대시스템이 단순히 진도에 대한 계획과 개발이 차근차근 이뤄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가지 내부 정치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여기에 디지털 금융, 혁신이라는 화두가 던져지면서 거버넌스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다보니 금융사 차원의 프로젝트 리소스 관리와 거버넌스 관리가 쉽지 않게 됐다. 투이컨설팅 김인현 대표는 “전행적 서포트, 디지털과 관련한 차세대 거버넌스와 리소스 배분 문제 등이 앞으로 고민의 여지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시스템 구축 관점의 차이가 프로젝트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뱅킹시스템은 창구직원의 오퍼레이션을 중심에 두고 개발된 것”이라며 “스마트 금융 부서는 이러한 것을 타파하고자 고객을 중심에 둔 시스템과 서비스를 개발하려는데 이것이 IT부서와 조율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풀이하자면 설계와 실제 구현 단계에서 서비스 부서와 IT부서가 갈등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차세대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항상 있었던 문제였지만 ‘스마트 금융’으로 촉발된 디지털 혁신에 대한 요구사항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관련 부서의 입김도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 이는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기간이 늘어날 수 있는 문제를 담고 있다.

차세대시스템 구축사업자 시장이 변화한 것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삼성SDS가 공공 및 금융 SI시장에서 철수한 이후 시장은 LG CNS와 SK C&C 양사 경쟁구도로 재편됐다. 하지만 금융 차세대시장이 이들 업체에 더 이상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LG CNS, SK(주) C&C 모두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고 있다. 금융 차세대사업의 경우 우선협상과정을 통해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을 고려해 사업비용을 책정하게 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축 업체들이 다소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사업을 수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물론 저 비용으로 사업을 수주해도 주사업자는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다. 하청에 재하청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하도급 방지 강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다.

또 이들 IT서비스업체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상대적으로 금융 차세대시장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금융을 포함해 제조, 유통 등 모든 사업군에 적용이 가능한데다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규모 사업으로 확대될 수 도 있다.

반면 플랫폼 위주의 사업으로 가져가려는 방향성이 뚜렷해 차세대시스템처럼 대규모 인력 베이스 사업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시스템 구축 업체들이 예전과 달리 발주처인 금융사와 협상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올라서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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